한국인은 빨리빨리

결핍을 속도로 채운 사회

by 맛소금 반스푼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빨리빨리"
회사에서 동료들이 프로페셔널한 눈빛과 말투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 때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A님이 하시고, B님과 C님은 이렇게 저렇게 준비해서 언제까지 합시다.


마감 일정은 그동안 경험에 의해 측정된 범위를 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일정은 법제화되어 측정하고 평가하며 비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마냥

일의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빨리 결과만 내놓으라는 식의 업무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이 단순한 문제해결 또는 목표달성을 명확하게 해내어 일이 진행된다면, 이 문화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허나 제가 속한 업종에서 빨리빨리는 양날의 검일 때가 많았습니다.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본질을 놓고 이를 어떻게 할지 바라보기 위해서는 정밀한 선행 준비가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주어진 시간은 그리 여유롭지 않습니다.


사고와 사유를 기반으로 과제를 바라보고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할애해서 고민을 해야 하지만,
이것을 무능력 또는 나태라는 껍질을 씌워 바라보는 성질 급한 동료들은 언제나 "빨리빨리"를 외치기 마련입니다.

결국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최고다.'라는 말은 신속함이라는 그늘 아래 가려지고, 남는 것은 모방에 가까운 재포장과 패러디만 난무합니다.


모방도 사실 성공하려면, 모방의 대상을 고스란히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구조를 이해하고, 그 위에 다른 것을 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껍데기만 바꾸는 것이 일의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질에 대한 접근이 부족한 채 외형만 비슷해져버린 결과물이 반복되고,

이는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쓸쓸하게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실패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는 그것을 논하거나 접근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민족적 성급함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무엇 때문이다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원래부터 이토록 성급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지역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온 생활 방식은 의식주에 베여 있습니다.


의 - 우리의 전통 의복인 한복은 입는 과정 자체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속옷부터 차근히 갖춰 입고, 매듭을 지어 여미는 방식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식 - 우리의 음식 또한 염장과 발효를 기반으로 합니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 그리고 김치까지, 기다림과 숙성을 거쳐야 완성되는 슬로우 푸드입니다.


주 - 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춧돌을 놓고, 나무 기둥을 세우고, 흙을 발라 굳히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공간이 완성됩니다.


이처럼 삶의 기본 요소들 어디에서도 ‘빨리빨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과 과정을 견디는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급하게 살게 되었을까요.

전쟁 이후 초토화된 상황에서 빠르게 복구하고 성장해야 했던 시대의 요구였을 수도 있습니다.

결핍 속에서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던 경험들이 축적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외부에서 이식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성급한 해석과 남용과 오용은

군부독재와 경제성장이라는 상처와 영광을 우리에게 안겨줬습니다.

물론 고통을 감내하였던 전후 세대 분들의 희생 덕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실패를 감당할 여유가 없던 시기, 아니 성공의 경험이 전무하던 시대에는
빠르게 시도하고 빠르게 수정하는 방식이 생존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교육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어떻게 빨리 풀어내느냐가 중요해졌고,
정해진 답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능력이 평가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규격을 맞추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그 규격 자체가 삶의 목표처럼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적당히 이름 있는 대학,
안정적인 직장,
비슷한 배경의 배우자,
그리고 자산을 늘려가는 삶.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실패와 도태로 간주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빠르게 그 기준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다림은 손해가 되고,
생각은 사치가 됩니다.

조금의 지연조차 불이익처럼 느껴지고,
그 감각에 맞춰 사회 전체가 속도를 끌어올립니다.


결국 우리는 과정을 줄이고 결과를 앞세우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그 방식이 효율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효율은 언제나 같은 방향만을 가리킵니다.


이미 정해진 기준,
이미 검증된 방식,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

이렇게 효율의 민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안에서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다른 방향을 탐색할 여유는 점점 줄어듭니다.


우리는 지금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속도가 우리의 방향을 수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속도로 인해 생각과 반성의 시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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