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용은 맞지만, 점점 무거워집니다.
"한 개의 거짓말은 열 개의 거짓말을 낳는다." 라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 상황이라는 것도 참 다양하지요. 타인의 아픔을 줄이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은 제외하겠습니다.
단순하게 자존감이 낮으면, 자기 방어 기제로 거짓말들이 튀어나옵니다.
지식, 경험, 재산 등 그 어떤 형태의 외부 자극을 방어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 내지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 역할을 스스로 연기하게 됩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짓말은 이러한 인지 부조화 상황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가치가 침해받거나
아니면 법적으로 큰 제약을 받을 위기 같은 곳에서 주로 드러납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들의 거짓말 아닌 애매모호한 표현부터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학생과 교사,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거짓말은 나타납니다.
거짓말을 포괄적으로 매우 조리 있고 치밀하게 만들면 그것은 소설 같은 문학이 되기도 하지만, 인과관계를 만들어 내고 서사와 흐름 전체를 써 내려가는 훈련, 작가의 재능과 노력, 인생이 합쳐진 글로 빚어지는 창조적인 인과의 결과물과 단순한 거짓말은 그 궤가 다를 것입니다.
거짓말은 결국 행동이고, 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일까? 좀 더 현상으로 바라본다면,
도구적 거짓말(사기)과 자기기만형 거짓말 크게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무해한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겠지만, 진리가 아닌 거짓은 부채처럼 결국 돌고 돌아 누군가는 짊어지게 돼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심리학적으로 특히 범죄 심리학에서 사기를 다루고 있고, 또 사람에 따라서 직접 피해를 보기도 하다 보니, 살면서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거짓말이 오가는지, 이미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감지하고 있으실 겁니다.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과연 그 거짓을 아직 거짓으로 알고 있을까요?
처음에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순간, 그 빈틈이 드러나고 말겠지요.
인간은 거짓말을 계속 유지할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거짓을 믿는 쪽을 선택합니다.
결국 거짓말은 타인을 속이기 위한 행동에서 시작되지만
반복되는 순간,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무해한 거짓말처럼 포장되는 자기기만입니다.
자기기만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결국 기만이 계속되어 자신의 진리나 철학과 충돌할 때 더 크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개인적 추론에서 출발합니다.
자기기만은 인간 실존의 가장 기만적인 모순으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철학은 '어떻게 내가 나를 속이면서 동시에 속을 수 있는가'라는 구조적 모순을 다뤄왔습니다.
"자기기만은 거짓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마치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갇힌 '사물'인 것처럼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은 자유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가장 정교한 기만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기만은 단순한 인식의 오류가 아니라 책임을 재배치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스스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결과의 원인을 바깥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견디기보다 해석을 선택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인간이 객관적 진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유약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진리란 사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유용한 허구'에 불과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하는 대신 그것을 나에게 유리하게 포장하는 '해석'을 선택함으로써 생존을 이어간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무자기, 毋自欺)이 수양의 시작이다." - 《대학(大學)
동양 철학, 특히 유교에서는 자기기만을 도덕적 파멸의 근원으로 보았습니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신독(愼獨)'의 정신은, 자신을 속이는 순간 인간 본연의 진실함(誠)이 썩기 시작한다고 경고합니다.
"아집(我執)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 불교적 관점
불교에서는 자기기만을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무명(無明)'으로 파악합니다. '대단한 나' 혹은 '상처받지 않아야 하는 나'라는 가공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자아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라는 지적입니다.
자기기만은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고통스러운 진실을 무의식적으로 왜곡하거나 회피하여,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인지적, 정서적 방어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를 진화 생물학, 행동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부 분야에서 이를 다양하게 설명했습니다.
“자기기만은 타인을 속이기 위해 진화한 메커니즘이며, 자신을 먼저 속일 때 더 효과적으로 타인을 속일 수 있다.”
-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 , 바보들의 어리석음(The Folly of Fools), 2011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2011
이들의 원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인지 부조화 이론의 개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 이론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1957)에서 이미 정의된 원문을 보면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충돌할 때 그 불편함(인지부조화)을 줄이기 위해 현실을 왜곡한다."
학문적 도구는 다르겠지만, 왠지 "인지부조화"에 대한 반응으로 느껴지는 표현들이 보입니다.
이미 많은 현대인들 모두가 직장이던 개인 사업이던 생계의 순간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모든 일 들 속에서 인지부조화를 줄여나가며, 설령 하기 힘들고 싫더라도 참아내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불합리한 일이나 처우를 참아내야 할 때 인지부조화를 뛰어넘기 위해 자기기만을 거쳐 마음을 고쳐 먹고는 합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자기기만은 생존 본능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현재 벌어지는 불편한 것들을 마주 할 때, 현재 상태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전전두피질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남을 감지하고 '잘못되었음'을 인지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후속 기전은 공포, 불안, 위협 감지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이를 고통처럼 받아들이며 활성화됩니다.
그리고 다시 전전두피질이 이 불편함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가라앉히고 빠른 정서 안정을 이루어 내는 것이 유리한 환경이기에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만약 이전에 유사한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편도체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진실을 조금씩 왜곡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멘탈 관리’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번에도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편도체를 우리가 어디까지 다스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씁쓸하면서도, 우리가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기만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때로는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지탱해 주는 부목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성장을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 되기도 합니다. 뇌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진실을 왜곡하며, 철학적 자아는 책임이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어쩔 수 없음'을 연기합니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나의 모습' 중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평온한 일상을 위해 정교하게 조각된 기만일까요? 타인을 속이는 거짓말은 들키지 않으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자신을 속이는 기만은 내가 곧 목격자이자 범인이기에 결코 피할 수 없는 '마음의 부채'로 남습니다.
이 마음의 부채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터질 때, 본연의 자아와는 다른, 원하지 않는 일들이 펼쳐지곤 합니다.
마음의 병, 스트레스에 대한 반대급부, 욜로 이런 소비적 세상에서 과도한 소비 중인 인간에게 자기기만 역시 자신을 스스로 소비하는 모습 아닐까 합니다.
자기기만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거친 세상을 건너기 위해 입어야만 하는 투박한 갑옷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갑옷이 너무 무거워져 당신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그 갑옷을 '진짜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점검해 볼 일입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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