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건강에 좋지 않아요.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을 읽으면 작고하신 시인님의 고뇌와 방황은 결국 타인에 대한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자아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이러한 시적 허용이 시기와 질투를 언어적으로 혼용하게 만든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샘이라는 순우리말도 있었는데 아쉽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반면에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는 남녀 관계에서 선택받지 못한 박해일 배우의 고군분투가 그려지며 정확한 의미의 '질투'를 보여줍니다.
우리말의 질투는 관용적으로 이렇게 두 가지 용도로 쓰이지요. 성과나 능력이 돋보이는 타인을 향한 마음, 그리고 이성 간의 소유욕. 같은 단어를 쓰지만 그 본질은 사뭇 다릅니다. 오늘은 이 두 감정을 다시는 오용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영어 단어로 구분한 이유는 흔히 섞어 쓰는 두 감정을 엄격하게 갈라놓기 위해서입니다.
① 시기(Envy): 자신과 대상의 2자 관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이 가졌을 때 느끼는 일차적인 반응입니다. 타인의 소유물을 향한 조금은 공격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부럽다는 표현으로 축하와 기쁨을 나눌 수도 있지만, 개인에 따라 내면에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을 시기로 보느냐 선망으로 보느냐로 사람의 인품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시기와 선망은 결국 두 사람 간의 관계의 밀접함과 앞으로 지속성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유년기를 함께 보낸 친구가 어느 날 SNS에서 자신의 성공적인 결과만 보여줄 때, 과거의 평가기준을 현재 시점에 그대로 들이대며 시기하게 되지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세월과 노력에 위치가 바뀐 것을 그 순간에 바로 알아차리긴 쉽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삶을 잘 바라보고 위치를 객관화할 수 있다면, 선망으로 바라봐주면 될 일입니다.
② 질투(Jealousy): 3자 관계의 삼체 문제(3-body Problem)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관계나 가치를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질투는 물리학의 삼체 문제처럼, 두 사람의 관계에 세 번째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 궤도는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세 물체의 중력에 의한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듯이, 그녀(그)의 마음이 누굴 향하게 될지 애매모호한 상태라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약한 유대관계의 두 사람 사이에 더 강한 매력(중력)을 가진 누군가가 등장하면, 사람은 곧바로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상대의 반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붙이고, 관심과 상상, 정보와 증거를 불쾌함 속에서 조립하게 되지요.
때로는 이미 친밀한 두 남녀 사이에서는 작은 유희나 작은 경고 같을 수 도 있습니다. 관계를 해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느껴지는 불쾌함이지요.
질투의 본질은 타인이 우월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 그리고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질투는 타인을 무너뜨리기 전에 이미 나를 먼저 무너뜨리고 있는 감정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 뇌는 시기와 질투를 모두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만, 활성화되는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① 시기(사회적 고통)
타인의 성공을 볼 때 우리 뇌의 전측 대상피질(dACC)이 활성화됩니다. 이는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와 같은 부위입니다. 즉, 시기는 타인의 우월함이 나를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줍니다.
② 질투(공포와 감시)
관계의 상실을 감지하면 편도체(Amygdala)가 비상벨을 울립니다.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 충동이 생기거나, 복측선조체가 보상 회로를 자극해 상대를 통제하고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우게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감정들이 우리 내면의 어떤 구멍을 메우려 하는지 설명합니다.
① 시기(현실과 상상의 괴리)
시기는 종종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예상보다 더 앞서 있을 때 발생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려 내 수준으로 맞추려는 하향 비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능력과 성과에 대한 차이를 감지한 것 자체가 비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② 질투 (자기 붕괴의 공포)
질투는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에서 기원합니다. 관계의 문제가 자존감의 문제로 전이되는 순간, '질투 반추(Jealous Rumination)'라는 사고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무너뜨립니다. 반면 질투는 공포심에서 출발하여 질투의 대상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 그 폭력성이 더해집니다.
① 시기는 약자의 저항 의식이다
니체는 이를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불렀습니다. 스스로 승리할 힘이 없는 약자가 강자의 가치를 부정하며 자기를 위로하는 감정입니다. 에너지는 넘치지만 창조적이지 못한, 아까운 소모전입니다.
② 질투는 사랑과 미움의 위태로운 동행이다
스피노자는 질투를 사랑(보유하려는 힘)과 미움(경쟁자를 밀어내려는 힘)이 뒤엉킨 정념이라 보았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그 속에는 공격성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최근 '충주시' 유튜브의 김선태 주무관이 퇴직 후 단숨에 구독자 100만을 달성한 반면, 기존 채널의 구독자가 급락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혹여 그 하락이 누군가의 시기가 유발한 결과라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경제적 대참사'일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분명 우리를 노력하게 만드는 강력한 에너지원이 됩니다. 하지만 이 연료로 움직이는 삶은 결국 타인의 궤도를 공전하는 삶일 뿐입니다. 남의 뒷모습만 보고 달리는 경주는 결코 행복한 결승선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기형도 시인의 탄식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미움보다 먼저 오는 감정입니다.
타인을 미워하기 전에, 내가 지금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솔직한 신호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마치 한 세트로 묶인 감정처럼 문학, 철학, 심리학, 종교 속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결국 비슷하게 출발합니다.
내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이 감정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물음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겠지요.
질투는 애정을 느끼는 대상에게 솔직하게 전달된다면 오히려 이해받을 여지가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말하지 않아 오해를 키우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드러내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요.
반면에 시기는 아직 자신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반성을 하게 만들지요. 타인의 빛을 시기하기보다, 내 안의 불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타인을 깎아내리는 데 쓰기엔, 우리의 삶이 아깝기만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 영혼의 부끄러운 부분이다." - 프레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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