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한 걸음이 완벽한 멈춤보다 나은 이유
"최선을 다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잘하는 게 중요해."
인격적으로 존경했던 멘토이자 상사였던 분과 함께 일할 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들었던 말들입니다. 몇 번의 실수와 부족함을 알려주시면서 저를 키워주시려 시간을 내주셨지요.
잘하려다 보니 신중해져서 정작 중요한 시기를 못 맞췄던 적도, 부족한 시간 내에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내용이 부실한 적도 있었고요. 무엇을 해도 그분의 높은 기준을 못 맞출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포기하고 이직을 선택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그때의 훈련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게 아닐까 감사하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실수들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전체가 마비되지 않는 이상은 어찌 됐건 굴러갑니다. 단, 사소한 실수들이 보이면, 큰 일을 맡기기 꺼려지긴 하겠지요.
제가 겪은 사회적 완벽주의는 이런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 영향인지, 몇 년 동안은 맡은 업무에서 빈 틈은 곧 능력 부족으로 스스로 인지해서 오히려 숨 쉴틈이 없는 답답함에 빠져 매몰되기도 했었고요.
다행히 지금은 기획적 빈틈은 다른 창의성이 들어갈 구멍이라 생각하고 어느 정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구멍을 제가 채울지, 동료가 채울지 그건 상황에 따라 조절하면 될 일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게 된 현대 사회에서 경험하는 완벽주의, 이게 과연 옳은 것인지 좀 이야기해야겠습니다. 학교에서는 틀린 답에 바로 빨간 줄을 그어 돌려줍니다. 사회에서는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문책이나 업무 전환 등으로 배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이렇게 믿기 시작합니다.
"실수하면 안 된다."
이 단순한 문장은 의외로 많은 것을 망가뜨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완벽주의는 결국 한 가지 인식을 남깁니다. 실수하는 사람은 시스템에서 밀려난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이 불안을 만들어냅니다.
심리학에서 완벽주의는 흔히 성실함과 유능함의 다른 이름처럼 오해됩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완벽주의를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폴 휴잇(Paul Hewitt)과 고든 플렛(Gordon Flett)은 완벽주의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지향 완벽주의입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타인지향 완벽주의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완벽을 요구하는 유형입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완벽주의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완벽을 기대한다고 믿는 상태입니다.
특히 세 번째의 경우는 직장에서 많이 겪곤 하지요.
또 다른 연구자인 랜디 프로스트(Randy Frost)는 완벽주의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완벽주의의 중심에는 높은 기준이 아니라 실수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Concern over Mistakes)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수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자기 가치의 붕괴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일을 미룹니다.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을까 봐.'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지연이 발생하지요.
최근에는 취약성과 수치심을 연구한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도 비슷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녀는 완벽주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완벽주의는 자기 계발이 아니라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방어 전략이다.
완벽주의는 더 잘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비난받지 않으려는 심리적 보호막에 가깝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주의는 성과를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동을 멈추게 만듭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완벽주의적 미루기(perfectionistic procrastination)라고 부릅니다.
완벽주의가 행동을 멈추는 이유는 뇌에서도 확인됩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곧 불안한 상태입니다.
불안이 커지면 먼저 위협을 감지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됩니다.
문제는 완벽주의자의 뇌는 어떠한 실수 가능성도 위협으로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실수 가능성 인지 → 편도체 활성 →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
이 과정이 시작되면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상한 상태에 들어갑니다.
생각은 많아지는데 결정은 못 합니다. 결국 행동하지 못한 채 불안만 커집니다.
이것이 완벽주의의 신경학적 루프입니다. 또는 강요받은 완벽주의에 의해 조종당하는 우리 직장인들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사실 인간의 뇌는 애초에 완벽을 목표로 만들어진 기관이 아닙니다.
인간의 학습 방식은 대부분 오류 기반 학습(error-based learning)입니다. 이는 머신러닝에서 모델이 오차를 줄여가며 학습하는 방식과도 유사합니다.
틀리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합니다. 이 반복을 통해 뇌의 신경 회로가 조금씩 강화됩니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도록 설계된 존재입니다.
완벽을 요구하는 순간, 인간의 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지요.
흥미롭게도 불안은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하이데거는 불안을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평소에는 사회 속 역할로 살아가지만 불안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르트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인간은 본질 없이 태어나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즉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조적 특징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항상 불안정한 심리로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집니다. 그때 불안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 깨우쳤습니다. 문제가 불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미뤄진 행동이 불안을 키운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불안은 문제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뤄진 행동의 길이에서 자랍니다.
만약 스트레스의 요인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있다면, 그 불안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100%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면, 불안요소라도 덜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문제를 그대로 두지 말고, 무엇이든 시도해야만 하지요.
심리학에서도 지연된 행동에 대해 연구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지그아르닉(Bluma Zeigarnik)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완료된 일보다 중단된 일을 더 강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지그아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뇌는 해결되지 않은 일을 미완성 상태의 긴장으로 유지합니다. 그래서 끝나지 않은 문제는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행동을 미루면 뇌는 그 문제를 미해결 위협으로 계속 인식합니다.
이때 편도체는 반복적으로 경보를 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유지됩니다. 그래서 문제는 그대로인데
불안만 점점 커집니다.
임상심리학에서도 같은 설명이 등장합니다.
불안 장애 연구에서는 회피 행동(avoidance behavior)이 불안을 유지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를 피하면 잠깐은 마음이 편해집니다. 하지만 그 순간 뇌는 이렇게 학습합니다.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 학습이 반복되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황에서도 같은 불안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불안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를 사용합니다.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하는 것.
행동이 시작되는 순간 뇌는 그 문제를 더 이상 막연한 위협이 아니라
처리 중인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불안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단순합니다.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은 실행입니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첫 번째 행동.
완벽한 답이 아니라
첫 번째 시도.
인간은 행동을 통해
생각보다 빨리 균형을 회복합니다.
완벽주의는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요구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일 것입니다.
요즘은 완벽한 사고와 추론은 우리보다 AI가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실수하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오류가 없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은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한 걸음을 내딛는 것.
아마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용기는 완벽해질 용기가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시작할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수정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계속 고쳐 나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완벽주의 #불안 #불안의해소 #작은실천 #행동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