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의 일상 모험 #4. 봄날은 아프게 간다

적당한 고문은 건강에 좋답니다. 살려는 드릴게 - 고문센터장

by 맛소금 반스푼

그래, 개복치 왔다.

꽃피는 봄이 오고, 모두가 좋아하는 벚꽃이 피고 지면, 본격적인 봄의 향연이다. 그렇다 버드나무에서 피어난 꽃가루가 날려 알레르기가 되어, 슬프지 않아도 슬퍼 보이는 그 계절, 엣취~! 봄이다.


바다에도 봄은 늘 찾아온다. 내 감상도 차오른다. 느끼하면 콜라 마시며 읽어달라.


봄, 그렇다 새로운 출발과도 같은 계절이다. 새로운 성게가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무엇인가 자라난다. 자연의 섭리는 그렇게 신비롭다. 자연의 신비는 어디에나 찾아와 있다. 세상에도 나에게도.

겨우내 자라왔던 소중하고 기름진 내 뱃살도 자라난 것을 바라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뻔 했다.


오리나 거위를 괴롭혀 만든 옷을 여미며 소중히 숨겨왔던, 맘 편히 살찌우던 뱃살이 다른 생선들에게 보이면, 초 비상사태다.


벨트 위에 얹힌, 둥둥 떠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대뱃살!

이 생선의 기획력과 저 생선의 집중력, 각자의 프로풰셔날함을 자랑하듯 움직이지 않고 보냈던, 춥고 스산한 바닷속 하루의 끝자락에, 소모된 열량과 쌓여버린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마음 맞는 생선끼리 소소하게 마신 술과 안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옷 속에서 뱃살로 자랐을 뿐이다.


하지만, 봄은 오고야 말았다.

옷이 점점 얇아지면, 뱃살도 점점 비쳐 보이니, 어디가 맛있을지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다른 생선들의 시선이 늘 괴롭기만 하다. 아무도 이것이 나의 기획력의 결과라고는 인정 안 해주는 잔혹한 현실. 인사를 해도 앞으로 잘 안 숙여지니, 내 시선은 배를 향한다. '배를 보세요' 라는 듯한 나의 눈길.


그렇다면! 마주하고 인사하는 생선도 내 눈길을 따라 내 배꼽이 어딨는지 찾아낸다!

치욕스럽다! 당장에라도 죽을 거 같으니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작고 소중한 나의 월급이 찍힌 통장을 열어본다. 다행이다. 스치듯 안녕하고 남은 성게알 몇 개가 보인다. 아이스 성게알 백 개만 참으면 될 것 같다.


점심시간, 바다 옆에 놓여있는 생선고문센터로 맥이 빠진 듯 들어갔다.

작년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개복치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고 들어간다.


성게를 몇 개 놓아주고 이름을 적어 등록한다. 나만의 소중한 임시창고도 생겼다. 작년에도 등록해서 일 년이 지나가긴 했다. 마지막 방문일은 9월이었나,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바닷물에 녹도 슬지 않는다는 철로 만든 도구들에 생선들이 차례차례 들어간다.

늘리고 돌려지고, 지느러미들을 그렇게나 열심히 움직인다. 노력의 결정체 같은 땀이라는 진액을 잔뜩 흘리고 나오면, 깨끗하게 씻고 나와 새 생선인 듯, 머리를 말리며 나오는 곳.


잘빠진 삼치와 날렵한 꽁치, 힘센 참치들이 즐비하다. 자기관리하는 생선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들의 미려한 몸매에 위축되어 눈치를 보며 하나씩 따라 해본다. 결국 그들의 무게감에 눌려, 어느 한쪽 무한 헤엄틀 위에 올라가 열심히 꼬리를 씰룩이다 나온다.


그렇게 한 주씩 시간이 흐르면, 어느샌가 꿈꿔왔던, 참치가 되겠냐?

개복치는 개복치, 점심시간 1시간, 바다 탈출통에 몸을 비벼 들어가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것조차 만원이라 바다 밖으로 나오는데 10분이나 걸린다. 그렇다고 미리 나오기도 애매한, 눈치가 미덕인 바다.


부랴부랴 고문센터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고문틀에 몸을 실어 납작해졌다가, 길쭉해졌다가, 반복하며 몸이 조금 눅눅해지면, 시계를 본다. 점심시간이 20분도 안 남았다. 부랴부랴 씻고 나오고 나면 허무하게 점심시간이 끝나버린다.


거울을 보면, 얼굴은 납작해져 쥐포맨 쥐치를 닮아가는데 몸은 그대로다. 이거 맞나 싶지만, 머릿속에 참치를 꿈꾸며 그냥 계속하고는 있다.

햇살 물고기 체육관에서 운동 중.png 덤벨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삶의 무게(1kg) 들어야만 한다!

성게를 적게 먹는 게 답이지만, 고문실에 끌려가 취조당한 뒤에는 영양 보충이 필수이기에 양보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익스피쉬가 적어낸 클래식 중의 클래식 '햄릿'의 말이다. 햄릿이 살았을까? 저런 고민을 하면 결국 죽는 거다.


그는 죽음으로 작품을 완성시켰지만 나 죽는다고 누군가 감동받을 이도 없으니 살아야한다.

그러니 바다앞 편의점에서 푸른색 해초 몇 장 들어간 천연의 맛, 건강의 맛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바다로 다시 들어간다.


오후 내내 성게를 따다보면, 슬며시 배가 고파진다.

생선들 힘들면 먹으라고, 여기저기에 맛있는 것들이 유혹한다.
파이들이 그렇게나 많은 복지 좋은 우리 바다.

먹을수록 정든다는 초코맛 파이, 프랑스 감성을 한가운데 박아 넣은 프랑스 사람 파이, 엄마손을 핥는 맛이 나는 파이까지 다양하다.


오후 4시, 집으로 도망치기까지는 아직 두세 시간 남아있다. 간식통 앞에 섰다. 뱃살이 테이블에 부딪혀 간식을 살포시 흔든다. '환영인사하듯 움찔거리기는, 나를 반긴 건가?' 일단 하나씩 집어든다.


앗! 균형이 안 맞다. 프랑스 사람 파이는 빨간색과 녹색이 있어, 그날의 생선들의 기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녹색이 많이 남아있다.


이것은 그린라이트일지도 모른다. 생선들 보면 좌, 우가 똑같이 생겼듯이, 저 빨간 줄과 녹색줄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논리가 부족하다. 양심이 내 심장을 찌르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내 보험, 심장 질환 특약 가입 안되어 있다. 그렇다 논리가 더더욱 필요하다.


그래, 아이언맨이 혼내줬던 타노스도 언제나 균형있게 절반 남겼다.

공기밥도 절반 남길 것 같은 천하의 예의 없는 타노스도 빨간 맛만 사라지는 것을 원치는 않겠지.


찰나의 세월동안 고민을 하고 결론을 지었다. 모든 파이를 내려놓고, 녹색 프랑스 사람파이를 집어든다.

'봉쥬ㄹ' 어디선가 들은 발음을 따라 하며 집어 들었으니 기품마저 넘쳐난다.


다른 생선이 보면, 운동한다면서 그걸 왜 먹어요?라고 물어볼게 뻔하다. 몇 개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숨겨서 자리로 왔다. 그리고 하나 까서 캬옵~!, 일을 하다 보니 퇴근.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으니 지갑과 함께 파이가 하나 딸려 나왔다.
지금도 하나 물면서 쓰고 있다. 무언가 서글퍼진다. 미안하다 F 맞다.


봄, 대뱃살과의 전쟁의 계절. 타인의 시선이 뭐라고 그냥 뱃살을 내밀며 살까 하다가도, 미끈한 몸매를 가진 등 푸른 생선들이 지나가며 쳐다본다. 탐탁지 않은 눈빛과 비수가 담긴 미소를 날려대는 것 같다. 운동은 하긴 해야 하나보다 싶다. 날렵해보여야 일도 잘할 것 같아보이는 곳, 바다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씁쓸함에 파이를 베어 물면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이 위안이긴 한데, 좋아하는 성게알이 먹고 싶다.

지느러미를 파닥 거리기만 해도 온몸이 쑤시는 고문당한 몸을 무언가로 달래고 싶다.


언젠가, 나도 참치처럼 미끈한 몸이 되고 싶지만, 개복치는 개복치니까.

어느 정도 타협은 미덕이겠지.

성게알 먹는 꿈이라도 꿔야겠다!


꿈꾸는 돌고래와 해초 아이스크림.png 꿈에서 먹으면 살 안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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