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의 일상 모험 #5. 저의 인기는요?

인사는 90도가 기본자세, 개복치 점수는요?

by 맛소금 반스푼

내가 왔다! 개복치다.


어휴 오늘도 숨 막히는 퇴근길, 옆자리 피곤한지 서서 졸던 사람이 머리로 어깨를 때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죽을 뻔했다. 그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다잡으면서 집에 왔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두근대는 가슴을 하루 종일 쓸어내려야 하는 시즌이 찾아온다.

부푼 기대를 가득 앉고, 잔뜩 차려진 음식을 생각하고 앉으면, 늘 실망하고 물러나는 잔칫집 밥상 같은 그 이름! 연봉협상!


메신저 알림이 오면 시작이다.

'개복치님, 어디로 오세요!'

약속의 장소로 들어가면, 결론을 듣기까지 조금은 기다려야 한다. 교장선생님의 훈화 같은 말을 듣고 나면,

'에~ 개복치님~'

'(두구두구두구두구)'

'성게 100개 더 드릴게요.'

'(??) 감사염~ 저기 해파리는 없나요?'

'좀만 더 수고해 주셨으면, 해파리 50개 더도 있었을 거예요. 올해는 더욱 잘해보아요'

'(엥??)' 목 끝까지 올라오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럴 거면 그냥 메일로 보내줘라.

A안 : 성게 100개 더!

B안 : 성게 100개에 해파리 50개 더!

이러면 고르기라도 하지, B 골라도 A 줄 거면서, 어차피 성게 100개 고정일 거면서!


그래도 참치들은 미안한 표정이라도 한다. 그래, 참치도 힘들 거다. 내가 B를 외치면, 고래한테 참치가 혼날 수도 있다. 또, 만약 고래가 'B? 그래 한번 해줘라'라고 해도, 그 위에 왕왕고래한테 콧김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안 오르는 건 아니니 만족해야겠지.


어쨌든, 평화로운 역지사지의 아름답고 품위 있는 멋진 자세였다.
이 얼마나 우아한 순간이었나. 멋있는 개복치답게 상상 속의 A를 골라줬다.

평소보다 더 밝게 웃어봅시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 동안 힘들었다.

표정 관리 하다가 얼굴에 주름 생겨서 죽으면 책임질 거냐!


이렇게, 얼마나 많은 멸치나 성게를 먹을 수 있느냐가 정해지는 중요한 순간이지만, 그것은 결국 그 전년도의 인사를 얼마나 잘했는지 조사하는 인사평가의 결과일 뿐이다.


인사를 잘하는 안녕 팀에서 메일이 온다.

'자자 바다 식구 여러분, 드디어 올해 인사평가가 시작되어요!'


그렇다. 인사평가라는 건, 인사를 잘하는 평가를 한다는 거고,

한 해 동안, 주변 생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년 성게 받는 수가 달라진다는 제도다.

한 마디로 바다 안에서 얼마나 생선들에게 매력을 발산했느냐가 포인트.


개복치라 못생겨서 이것 만큼은 자신이 없다. 생선들이 그다지 관심 없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둥둥 떠다니면서, 내 할 일 알아서 하고, 쉬어갈 때 쉬어가고, 잠수할 때 잠수하며, 파닥일 때 파닥했다.

개복치가 뽀꾸뽀꾸하며 움직이고 다니면, 시선들이 좋지 않다.


남들 삼일에 할 일, 부지런히 성실히 둥둥 떠다니면서 하면, 사실 하루면 끝날 일이다. 그리고 '다음 일 주세요' 해봤자, 일이 없단다.

그럼 또 논술 답안 작성하고, 그걸로 일 만들고, 그것마저 금방 끝내버리면 또 잠시 여유가 생긴다.

설마 그 여유동안, 잠시 뽀꾸뽀꾸한 게 싫은 건가?


생선들 하나하나 찾아가서 해명하다가 힘 빠져 죽을 일이니, 나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남들 점수를 매기는 것도 어렵다. 어떤 생선이랑 뭐 했더라 적혀있는 단서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름만 달랑 있다. 결국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기말고사 시험지 받을 때처럼 멍해진다. 인사를 어떻게 했더라? 기억이 없으니, 적당히 서운하지 않게 점수를 적어냈다.


올 해의 개복치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개복치 지나다닐 때마다, '안녕 개복치~?' 물어봐주는 새우나 꽃게들 정도는 알고 있다. 함께 일하는 빈도가 그래도 꽤 되지만, 영향력은 없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희망을 걸어본다.


인기투표 2표 확보다!


그래도 인사평가니깐, 모두에게 인사는 90도로 깍듯이 하고 다녔다.

며칠이 지나자, 인사평가도 끝났다.

이 공손한 자세를 보라! 마음만은 90도다!

자 이제, 결과 면담 시간이 왔다. 소속이 '바닥 먹이팀'이니 팀장이랑 면담한다. 아귀다.

'엣헴 개복치님, 이번에 성게랑 불가사리랑 소라 담당하셨네요?'

'눼~'

'성게는 좋은데 불가사리는 좀 별로네요, 소라는 뭐 그럭저럭'

'아 저 불가사리가 붙으면 잘 안 띄어져요, 그것들 촉수도 많아서 많이 따꼼스 합니다.'

'바다에서 그런 거 가리면 되나요?'

'어? 성게 잘 잡아서 바닥팀 보내진 거 아녔나요?'


잠깐 쉬자, 적다가 열받아서 죽을 거 같다.


'... 아무튼 우리 바닥팀은 모든 걸 적극적으로 잘하면 좋겠습니다. 저기 표층 먹이팀에서 못 잡고 떨어지는 거, 적극적으로 낚아채면 좋고요. 더욱 적극적으로 먹이활동 적극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모든 걸 적극적으로 잘하는 게 우리 팀입니다!‘

'(다 넣으면 매운탕인데? 새우, 개복치, 고등어, 곰치 왜 다 넣고 끓이지 그러냐, 당신도 들어가고)!'

'그럼 ‘ㄱ’ 받침 빼야겠네요, 그럼 우리 바다 먹이팀인가요?‘

‘….’

‘그래서 저 인사 평가 몇점이에요?'

‘….’


얼버무리며 면담 끝. 주변 생선들에게 깍듯이 90도로 인사도 잘하고 다녔지만, 결과는 협상때나 공개되는 이상한 평가다. 이제껏 일한 게 반영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참나, 위아래 쌍지느러미를 크게 파닥거려서, 바닥에 붙은 아귀 하얀 뱃살 보이게 뒤집어버리고 싶었지만, 해서 뭐하나 싶다. 끝나고 나왔지만 귀에 메아리가 돌고 있다. 적극적극을 몇 번이나 말한 건지 모르겠다. 계속 듣다 보니 긁적긁적으로 들린다. 긁적긁적이나 적극적극이나 처음부터 안 보고 중간만 들으면 소리는 뭐 비슷할 거다.


해마다, 큰 새우랑 했냐, 작은 새우랑 했냐, 꽃게랑 했냐 킹크랩이랑 했냐에 따라, 허리가 어딘지도 모를 몸으로, 최대한 꺾어가며 90도 숙이고 다녔는데,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바다인데, 사실 어디 가도 짠맛은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래 달콤한 바닷물은 없지. 그래야 바다니깐.


사실 아귀도, 개복치도, 참치도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긴 하다. 우리 생선들은 그냥 각자 정해진 구역 안에서 잘 움직이는 게 먹이활동 그 자체가 아닌가?


나중에 메아리로 들릴지도 모르니,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풀어놓고 도망갈 거다!


안녕팀! 새로운 자세로 바꿔가면서 시켜야죠, 왜 맨날 90도예요!!?
아니면 올바른 바다 인사법 교육 좀 시켜주세요!

일은 똑같이 하고, 평가방식도 비슷한데, 왜 결과가 매번 달라요? 대답 좀 해달라고요!


'인사 평가 기간이 아닙니다. 삐빗~!'


언젠가는 1등을 꿈꾸며~! 꽃성게 따올게요! 기다려봐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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