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구화인, 농인의 차이

by 운틴


나는 여성이고 회사원이다. 어릴 때 여름방학이 되면 이모가 사는 동네의 계곡에서 물놀이를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귓병을 앓았다. 병원에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귀를 앓으면서 점점 청력이 약해졌다. 아주 조금씩 난청이 심해졌기 때문에 서서히 적응하여 크게 불편을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보청기를 끼기 시작했다. 처음 낀 보청기는 적응을 못 해 소리가 너무 크고 귀가 아프다는 이유로 집에 처박혔고 몇 년 동안 잊혔다. 그러다 취업하려고 다시 맞춘 보청기가 성능이 좋아 계속 끼게 되었다.


청각장애인 중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들리지 않은 사람도 있고 사고나 질병, 혹은 유전적인 이유로 살면서 청력을 잃는 사람이 있다. 노인이 되면 몸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자연스럽게 난청이 되기도 하는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진 이 시대에는 우리 모두 노인이 되었을 때 청각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청각장애인은 농인과 구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농인은 수어를 쓰는 청각장애인을 지칭한다. 듣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수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수어를 모어로 배운 사람도 있고 자라면서, 혹은 성인이 된 후에 수어를 배운 사람도 있다. 또 청각장애인이면서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사람을 구화인이라고 한다. 청각장애가 있어도 수어를 전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청각장애인은 수어를 사용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나처럼 후천적으로, 혹은 나이가 들어서 청력을 잃은 사람은 주로 쓰는 소통 수단이 구어이기 때문에 구화인이다.


이처럼 같은 청각장애인이어도 청력의 정도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소통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자신에 대한 정보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통 방법이 수어라면 수어통역사가 필요하고 수어를 모른다면 필담이나 문자 통역으로 소통해야 하므로 이에 대해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게 필수다.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 이런 다양한 상황에 따라 장애인 편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보를 최대한 드러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다양성이 많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절에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건 감추어야 할 일이었다. 한때 다른 사람들이 내가 못 듣는 걸 알아차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못 알아들어도 알아들은 척 너그러운 가식의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넘겼다. 나에게 확인 질문이라도 하면 감춘 게 드러날까 봐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세상에 벽을 쌓아놓고 살려니 되는 일이 없었다. 차라리 수어를 쓰는 농인이라면 소통하려고 적극적으로 수어로 대화를 시도해 볼 텐데 조용히 있으면서 몇 마디 말해주면 난청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못 듣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청각장애인은 보청기를 끼거나 인공와우 수술을 해서 난청을 보완한다. 보청기를 끼면 컴퓨터 자판 소리, 차들이 지나갈 때 내는 소리, 지하철의 바퀴가 긁히는 소리, 사무실로 들어오는 사람이 문의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 등 여러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비장애인의 귀에 들리는 것보다 더 크고 시끄럽게 들릴 때가 있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나 차 소리가 시끄러울 때는 보청기를 빼거나 전원을 끄면 주위는 조용해진다. 이것은 보청기를 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우리는 사물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을 수는 있지만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닫을 수는 없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박쥐처럼 귀가 더 예민한 경우는 있지만 잠들 때를 제외하고는 청신경을 차단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처럼 미미하게 청신경이 살아 있는 사람은 보청기를 껴서 소리를 크게 만들어 듣고, 보청기를 빼서 주위를 고요하게 만들 수 있으니 어쩌면 소음에 민감한 사람 중에 이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