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장님이 오셔서 첫 회의를 하는데 옆에서 에어컨이 크게 돌아가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계신 부장님은 부원 20명을 향해 ‘제 말이 잘 들리나요?’라고 물었다. 다른 이들이 대답하기 전에 나는 냉큼 ‘안 들린다’라고 대답했다. 부장님 목소리가 작아서 가까이 앉았지만, 에어컨 소리가 너무 컸다. 내 반응에 부장님은 더운 날씨지만 잠깐 에어컨을 끄고 회의하자고 했다. 에어컨을 끄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듣지 못하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안 들린다고 혼자 대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괜찮다고 하는데 혼자 안 괜찮다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않고 나선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난 지금도 교회에서 줌으로 예배드린다. 줌에는 문자 통역 메뉴가 있어 나는 오르간 반주를 하며 문자로 번역된 화면을 보고 예배드린다. 이전에 줌 번역기가 없을 때는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교회에는 발성이 좋고 친절한 교인이 한 분 계셨다. 나는 그냥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웃거나 특별한 반응을 하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져 그분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럴 때면 예배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왜 웃는지 종이에 써주거나 귀에 대고 말해주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미처 다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면 그분을 붙잡고 또 물었다. 그 덕분에 교회 분위기나 사람들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일찌감치 교회에 흥미를 잃고 발길을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이 교회에 안 오면서 기댈 곳이 사라져 농아인 교회로 옮기려고 고민했다. 농아인 교회에도 가봤지만, 수어로 진행되는 예배는 낯설고 어색해 마음을 정하기 어려웠다. 나를 위해 들은 말을 옮겨주던 분은 수어는 모르지만, 다른 이들의 말을 가까이서 통역해 주던 나만의 통역사였다.
내가 조금 더 젊었더라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 사정을 알리고 도와달라고 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한테 불리한 점은 무조건 감추고 좋은 면만 드러내어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 테다. 그게 불가능하면 진작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섰을 것 같다. 그러면 그런대로 또 살만했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배운 지식과 알게 된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끈기를 갖고 악착같이 노력해서 얻은 선물이다. 나이가 들면 좋은 게 삶을 좀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게 다르게 생각될 수도 있고 부족함 없이 다 가진 사람만이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걸 불편하다고 여긴 사람은 그냥 지나가게 놔두면 된다. 내 장애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지 소통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불편해하는 사람을 붙잡고 구구절절 내 형편을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 그러니 꼭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들리지 않는다면 용기를 내어 안 들린다고 말해보자. 말하는 사람 가까이에 가서 앉거나 음질이 좋은 마이크를 가져오거나 해결 방법은 많다. 들리지 않는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들을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주지 않은 탓이다.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우리는 더 이상 청각장애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