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사람

by 운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들이 사는 동네와 이름이며 분위기가 비슷한 경기도 외곽에서 살았다. 그곳은 아버지의 고향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도 근처에 사셨다. 할아버지의 옆집에는 작은할아버지 가족이 사셨는데 작은할아버지의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나에게는 당숙으로 대학생이거나 고등학생 나이였던 아저씨들은 사촌 형의 딸이었던 나를 데리고 놀아주었다.


네 아저씨 중 어떤 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찍 돌아가신 큰 아저씨였던 것 같다. 그분은 나에게 윙크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하도 열심히 따라 해서 지금까지도 얼굴 근육을 찡그리지 않고 윙크를 할 수 있는데 장담컨대 그 누구라도 꼬실 수 있을 것 같다. 윙크 조기교육을 받은 셈이니 그 실력이 어디 가지 않는다.


점점 커가면서 윙크가 아무 때나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잘못하다간 신세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는지 윙크할 일이 없어졌다. 그나마 윙크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웃음이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살고 있는데 눈으로 보내는 메시지는 윙크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 어느 날은 같이 일하는 청각장애인 직원이 옆에 와서 수어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수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 그의 손을 보며 무슨 말을 하는지 놓칠세라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손을 보지 말고 자기 눈을 보라고 해서 당황했다. 손은 그냥 시야에 들어오는 대로 놔두고 눈을 보며 대화해야 제대로 된 대화가 된다고 주장해서 할 수 없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때는 그와 친해지기 전이었는데 상대가 젊은 남자이다 보니 눈을 빤히 쳐다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친해지는 게 먼저겠다 싶어 자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눈을 맞추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눈을 맞추고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농인 문화에서 지내다 보면 서로 쉽게 친해지고 신뢰 관계를 쌓기 쉽다. 눈을 빤히 보면서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를 속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눈으로 내 생각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연습을 했는데 그게 습관이 되어 청인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반응은 둘로 나누어진다. 어떤 사람은 내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 눈을 마주 보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눈 둘 곳을 찾는다.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잘 들으려고 하는 거라고 굳이 알려줘서 분위기를 흐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편해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집중해서 들어야 하므로 계속 쳐다보는 거라고 양해를 구하면 난처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가끔 언론에서 노룩패스란 말을 하는데 우리말로 풀자면 ‘보지 않음-무시(無視)’다. 대화를 할 때 수어를 하는 손을 보여줘야 하므로 상대의 시선을 내게로 향하게 하려고 손을 흔들어서라도 주위를 환기하는 농인 입장에서는 마주 보지 않는 상태에서 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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