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하는 수어

by 운틴

태어날 때부터 무대 체질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으로 떨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보일 수 있게 되었으리라. 초중고를 다니는 내내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면 떨지 않고는 목소리를 낼 수 없던 사람이 나였다. 지금 이만큼이나마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잊고 있었던 훈련 덕분이었다.


수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표정을 짓는 훈련을 했는데 이걸 또 무대 위에 올라가서 해야 했다. 마치 거울을 보듯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표정을 만들었고 무대 위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배짱도 키웠다. 나는 일상어로 쓸 수어를 배우러 갔지만 그곳은 수어전문교육원이라는 수어통역사를 교육하는 곳이었다. 통역사는 다른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동작을 크고 정확하게 수어를 해야 하고 수어를 음성언어로 바꾸어 통역할 때도 발표자의 위치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무대에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발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어서 무엇을 배우든 매일 단상에 올라가야 했다. 모든 수강생이 다 발표를 하는 건 아니었고 때때로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나 조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이 발표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 두 시간씩 반복되는 수업에서 오늘은 단상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밥을 먹듯이 발표하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고 수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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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에 올라가 발표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무대에 선 사람은 관객들을 마주 보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간혹 보면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해 허공을 헤매거나 아득한 저 멀리 혼자만의 꿈나라에서 헤매듯 발표하는 사람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아니, 가장 기본인 눈도 못 맞추면서 어떻게 수어 통역을 하겠다고 하는 건지 궁금하다. 수어를 배우기 전에 시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수어의 기본은 눈과 눈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태도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


매일 두 시간의 수업을 한 달씩 일 년 넘게 들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집에 돌아오면 연습을 위해 한 시간 동안 내가 수어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기록을 남겼다. 혼자, 혹은 다른 수강생과 같이 밴드를 만들어 각자 촬영한 영상을 올려놓고 봐주면서 핸드폰에 모아놓은 영상을 네이버 클라우드에 모으고 또 모았다. 그때 촬영한 영상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무슨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나 싶은 마음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단상에 올라가 발표를 한 시간은 수백 시간이 쌓였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몸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일부분이 된 몸짓과 태도가 지금을 나를 이루었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이걸 잊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있으면 무대에 서기 위해 내가 훈련한 수백 시간을 떠올려야겠다. 잊어버리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이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매일 한 방울씩 떨어뜨린 물줄기가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15센티미터 이상 되는 높은 단상에 매일 올라가는 행동이 어쩌면 삶에 대한 나의 태도도 바꿔놓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 그 위에 올라설 때마다 소심하고 나약한 나를 떨쳐버렸다. 오늘도 습관처럼 글을 쓰지만 이 작은 행동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 중이다. 저 앞에서 작가가 된 미래의 내가 단상에 올라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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