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국물요리의 베이스는 언제나 멸치 육수다.
한의원 다녀오는 길에 멸치가 좋아 보였는지, 사 오라는 말은 안 하고 칭찬만 늘어놓으셨다. 나는 눈치껏 장바구니를 들고 산책 겸 멸치를 잡으러 나섰다.
엄마 말대로 실한 멸치가 진열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가 우리 집 늦여름 밥상을 책임지겠구나’ 싶어 고이 모셔왔다.
신문지를 쫙 펼치고 멸치를 바닥에 늘어놓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손끝의 단순한 반복. 내장과 머리를 하나씩 떼어내다 보니 머릿속 상념도 차례차례 사라졌다.
단순한 작업에 몰입하다 보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주식 그래프에 흔들리던 기분도, 앞날에 대한 막연한 걱정도 잠시나마 잦아들었다. 마치 멸치 한 마리를 정리할 때마다 내 마음속 잡음도 함께 정리되는 듯했다.
멸치는 우리 집 밥상만 지키는 게 아니라, 내 정신 건강까지도 붙잡아주었다.
내장 하나 뗄 때마다 불안도 같이 떨어져 나가니, 이건 국물 재료가 아니라 명상 도구다.
다음 세션은… 콩나물이다. 준비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