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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역설

by 라온재

유럽의 도시를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골목을 마주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의 좁은 통로, 아저스나의 구불구불한 거리, 그리고 이름 모를 중세 도시들까지.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길, 옆으로 스치는 사람과 어깨를 맞부딪치며 걷는 길,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다. 이 도시들은 그 자체로 역사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된 건물에서는 벌레가 나오고, 주차는 불가능하며, 물류 이동도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간다. 불편함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 길을 걸으며 문득 도시 발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의 도시들을 떠올리면 그 답이 조금 보인다. 조선 시대 이후 수많은 전쟁과 화재,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울은 여러 차례 파괴되었고, 그때마다 도시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다. 파괴는 단순히 상처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전쟁 후의 폐허 위에서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파괴는 곧 경제 성장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시카고의 역사를 보아도 비슷하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는 도시 대부분을 잿더미로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철골 구조의 고층건물이 탄생했다. 도시가 수평이 아니라 위로 확장되는 개념이 처음 정립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파괴가 없었다면 현대적 도시 건축의 시작도 없었을 것이다. 런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666년 대화재로 중세의 골목과 목조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석재 건축과 체계적 도로망이 세워졌다. 도시의 위생과 방화 개념이 정착된 것도 이때였다. 불타버린 도시에서 근대적 계획 도시가 태어났던 것이다.


20세기의 베를린은 또 다른 의미에서 파괴의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가 냉전의 상징으로 분단되었지만, 통일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도시로 다시 설계되었다. 과거의 상흔 위에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 창조적 에너지가 피어났다. 지금의 베를린은 오히려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꼽힌다.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며 만들어진 정체성, 그것이 베를린의 힘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파괴의 사례다. 핵폭탄으로 도시 전체가 사라졌지만, 재건 과정에서 두 도시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은 단순한 추모 공간이 아니라, 인류가 다시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결심을 도시의 형태로 표현한 장소다. 파괴가 인간 정신의 성찰을 불러온 경우라 할 수 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또한 도시의 구조를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대지진과 해일, 화재가 도시를 완전히 무너뜨렸지만, 그 재건 과정에서 유럽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이 탄생했다. 직선의 도로, 정방형의 블록, 방화 건축법이 도입되었고, 이후 유럽 여러 도시의 모델이 되었다. 파괴가 새로운 질서를 낳은 것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 속에 있다. 한국전쟁으로 서울은 거의 전면 파괴되었지만, 그 뒤의 재건 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재건은 산업화와 맞물려 폭발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파괴가 경제발전의 시발점이 된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개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슘페터는 기존 질서의 붕괴가 새로운 산업과 기술 혁신을 낳는다고 보았다. 파괴는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전제라는 것이다. 도시의 역사 역시 이 논리를 따른다. 건물이 무너지고, 길이 사라지고, 삶의 터전이 흔들릴 때, 인간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더 나은 구조와 기술, 제도를 고안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명이 태어난다.


반면,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전쟁과 재해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골목은 좁고, 건물은 낡았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효율성과 속도는 떨어지지만, 문화와 역사의 깊이는 그 어떤 현대 도시보다도 풍부하다. 파괴를 통한 경제적 재건의 경험이 적기 때문에 경제적 성장의 속도는 느렸지만, 그 대신 문화적 자산과 관광산업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창조를 이루었다.


결국 파괴는 도시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형태로 찾아오지만, 인간은 그 위에서 다시 일어선다. 바르셀로나가 1992년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 전체를 개조하며 새로운 경제적 도약을 이룬 것처럼, 파괴는 반드시 물리적 붕괴일 필요는 없다. 기존 질서의 재편, 산업 구조의 변화, 사회적 가치의 전환도 넓은 의미의 파괴다.


나는 오래된 유럽의 골목을 걸으며 이 역설을 느낀다. 완벽히 보존된 도시가 주는 미학적 아름다움 속에서,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본다. 파괴와 창조는 서로를 전제로 한다. 도시란 사람과 역사,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파괴는 그 유기체가 성장하기 위한 통증이며, 재건은 그 치유의 과정이다. 그렇게 세상은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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