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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

자본주의의 맛

by 라온재

크루즈라는 공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느낀 것은, 이곳이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현장이란 점이었다. 배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 햇살은 아름답지만, 그 빛 아래서 벌어지는 경제적 구조는 그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묵고 있는 노르웨이안 다운(Norwegian Dawn)에는 약 3천 명이상의 승객이 탑승해 있었고, 그들을 서빙하고 청소하며 안내하는 인력은 1,800명에 달했다. 그 숫자만 봐도 이 공간이 얼마나 정교하게 조직된 경제적 기계인지 알 수 있었다.


승객 대부분은 은퇴했거나, 자본적 기반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부동산을 임대하거나 다양한 수입원을 가진 사람들, 혹은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여행을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확립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계속 여행하는 생활’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그들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주로 필리핀에서 온 직원들이었다. 영어가 가능하고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를 갖춘 필리핀 직원들은, 배 위의 거의 모든 서비스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고, 객실을 청소하며,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은 하루 종일 손님을 섬기지만, 그들의 존재가 있어야만 승객들은 안락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크루즈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모든 것이 돈으로 설계된 하나의 사회 실험장처럼 느껴졌다. 승객들은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하고 비용을 지불하며 즐거움을 소비한다.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마술 쇼를 보고, 댄스 파티에 참여하고, 요가나 건강 강좌를 듣는다. 모든 프로그램이 유료 혹은 무료의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결국 서비스의 질과 경험은 돈으로 결정된다. 승객들은 돈이 주는 자유와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통제한다.


반대로 승객들을 위해 움직이는 직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으로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그들의 하루는 서비스와 업무로 채워지며, 승객이 즐기는 순간순간에 반드시 그들의 노력이 연결되어 있다. 크루즈라는 공간은 이렇게 돈과 노동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를 보여주고, 동시에 그 구조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과 선택을 관찰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승객과 직원 사이의 이러한 경제적 균형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나름대로 내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았다. 유흥이나 쇼핑보다는 걷고, 조용히 책을 읽고, 바다 위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 맞았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하루 종일 댄스하고 수영하며 에너지를 분출했고,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결국 크루즈는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자본과 노동, 여유와 노력, 즐거움과 희생이 뒤섞인 하나의 사회적 실험장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돈이 많으면 즐길 수 있는 자유와 선택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그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노동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크루즈라는 세계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느린 리듬과 여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완전히 즐기기 위해, 누군가는 관찰하고 사색하며 자신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이 배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크루즈였다.


결국 크루즈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인간과 자본, 노동과 여유가 공존하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면서 관찰하고 경험하며,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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