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타 델가다는 아마 유럽의 서쪽 끝, 대서양과 맞닿은 마지막 관문일 것이다. 오래전 수차례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섬답게, 시내의 길과 건물은 거의 모두 짙은 회색의 현무암으로 지어져 있다. 낮은 담벼락과 포장도로, 오래된 교회와 광장까지 모두 같은 색조로 이어져 있어서 도시 전체가 마치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처럼 느껴진다. 화산이 만든 땅 위에 사람들이 세운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셈이다.
대항해 시대에 이곳은 스페인이 숨기고 싶었던 전략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힘의 균형은 언제나 잔인했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가 지나가며 이곳 사람들은 오랜 세월 고난을 견뎌야 했다. 비로소 1970년대에 이르러 포르투갈 자치령으로 인정받으며 평화를 되찾았고, 그제야 섬은 자기 이름을 되찾은 듯 조용한 안정을 누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폰타 델가다는 그 격랑의 세월을 뒤로하고, 유럽과 아메리카를 잇는 항로의 한가운데에서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대서양을 오가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꼭 필요한 기착지이자 쉼터다.
오늘 하루 시내를 천천히 걸었다. 항구에서 시작해 오래된 시청사와 광장을 지나, 화산석으로 지어진 도로를 따라 시장으로 들어섰다. 낮은 천장의 시장 안은 과일 향기로 가득했고, 그곳에서 우연히 작은 몽키 바나나를 보았다. 2유로를 내니 바나나를 한보따리넣어 주었다. 작고 동그란 바나나를 하나 까서 입에 넣는 순간, 달콤한 향이 퍼졌다. 쫀득하고 향긋했다. 지금껏 먹어본 어떤 바나나보다도 진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 단맛이 입안에 남는 동안, 낯선 도시의 공기도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배에는 음식을 들고 탈 수 없기에 한 보따리 다 먹느라 배가 빵빵해 졌다.
시장 밖으로 나오니 도시의 풍경이 한층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짙은 회색의 건물 벽 사이로 하얀 창문과 파란 하늘이 대비되어 눈부셨고, 거리마다 놓인 작은 화분과 벽화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식물원에 닿았다. 따뜻한 바람 속에 이국적인 식물들이 자라고, 그 사이로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폰타 델가다는 자연과 인간이 오랜 세월을 타협해 이룬 조화의 도시였다.
하루 종일 그렇게 걸었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스마트폰을 보니 어느새 2만 4천 보, 거의 12마일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피곤하지 않았다. 현무암의 길 위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질감, 시장에서 맛본 바나나의 달콤함, 식물원의 푸른 숨결이 하나로 엮이며 하루를 가득 채웠다. 이 섬은 화산의 힘으로 태어나 인간의 손길로 다듬어진 땅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위를 걷는 나의 발자국도 잠시 그 시간의 층위에 더해졌다.
이제 오늘 저녁 유럽을 떠나면 콜럼버스가 항해한 길을 따라 11월 캬라비안 해로 지리한 항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