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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서 명상

by 라온재

크루즈 항해 중에는 시간의 흐름이 육지와 다르다. 매일 시계가 한 시간씩 앞서거나 늦춰지고, 해가 뜨는 시간과 지는 시간도 조금씩 변한다. 육지에서는 당연하던 시간의 리듬이 바다 위에서는 흔들린다. 그래서 매일 잠들기 전, 다음 날의 시간을 다시 맞춰야 한다.


해가 뜨기 전의 갑판은 조용하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대신 파도에 부딪히는 물소리만 들린다.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기관의 진동이 귓가를 스치지만, 그것마저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 명상적인 배경음이 된다. 나는 이른 새벽마다 갑판의 트랙을 따라 달린다. 흔들리는 바닥 위를 달리는 건 묘한 경험이다. 땅이 아니라 물 위를 뛰는 기분. 달리기 30분쯤 지나면 몸이 뜨거워지고, 이내 공기가 내 숨결에 섞여 흩어진다.


운동을 마치면 피트니스의 요가실로 향한다. 큰 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아직은 어둠이 남아 있다. 요가 매트를 펴고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어깨와 고관절을 천천히 풀며 몸의 중심을 느낀다. 이어서 코어를 단단히 세우고 마지막에는 결가부좌로 앉는다. 눈을 감으면 배의 흔들림이 호흡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이내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른다. 붉은 빛이 바다를 가르고, 그 빛이 유리창을 넘어 얼굴을 감싼다. 그 순간, 나는 바다와 함께 숨을 쉰다.


명상은 나를 고요하게 만든다. 끝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내 마음의 중심을 찾게 한다. 해가 뜨는 찰나의 빛은 마치 지금 여기를 알려주는 듯하다. 운동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그 어떤 일정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마음은 잔잔하다. 파도처럼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생각들을 흘려보내며 마음의 잔물결이 가라앉는다.


저녁이 되면 또 다른 명상의 시간이 찾아온다. 석양이 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 갑판을 걷거나 천천히 뛴다. 하루 동안 들끓던 에너지가 서서히 가라앉는 시간이다. 달리기를 마치고 난 뒤에는 아침과 같은 자세로 앉아 해가 지는 방향을 바라본다. 바다는 노을을 품은 채 천천히 어두워지고, 하늘은 금빛에서 자주빛으로 바뀐다. 그 광경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불필요해지는 순간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바다 위 명상으로 채우는 일은 육지의 생활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평화를 준다. 바다는 늘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배운다. 해가 뜨고 지는 동안, 시간은 매일 바뀌지만 내 안의 리듬은 점점 단단해진다. 크루즈의 항해는 목적지가 아닌, 매일의 바다 위에서 나 자신과 만나는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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