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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관찰기

by 라온재

크루즈 여행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그중 가장 눈에 자주 들어오는 건 머리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노인들이다. 얼핏 봐도 일흔,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인다. 이들은 이미 크루즈의 베테랑들이다. 이번이 열 번째야., 난 여름엔 지중해, 겨울엔 카리브해. 이런 대화가 밥 먹듯 오간다. 진짜 밥 먹으면서 말이다. 그들에게 크루즈는 여행이 아니라 주소인 것 같다.


그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엔 식당, 낮엔 버스관광, 오후엔 썬베드 위의 소소한 일광욕.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과 잡담이다. 조용하고 느긋하다. 어쩐지 이들의 대화는 세상의 소음이 다 걸러진 듯 부드럽다. 크루즈사는 이런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안다. 충성고객, VIP, 멤버십 포인트의 주인공들. 어쩌면 크루즈의 진짜 엔진은 이들의 연금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혼자 여행하는 솔로 크루저들이 눈에 띈다. 매일 오후엔 그들만의 모임도 있다. 대부분은 중장년층 이상, 혼자서도 씩씩하게 와인 한 잔 들고 데크를 걷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들도 종종 외로움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 혼자 식탁에 앉아 해가 지는 수평선을 바라볼 때, 그 표정엔 묘한 고요함이 스친다.


피트니스 센터는 또 다른 세상이다. 처음엔 한산하더니, 하루하루 지날수록 사람이 늘어난다. ‘운동충’이라 부를만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운동기구 위의 몸집은 대부분, 솔직히 말해, 꽤 크다. 러닝머신 위에서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다 위로 출렁이는 리듬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나는 그 틈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수영장 근처는 또 하나의 자유 구역이다. 나이, 체형, 시선 따위는 없다. 몸매와 상관없이 모두 비키니를 입고 햇살에 누워 있다. 그늘만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이 장면이 좀 낯설다. 백인 여성들은 태양과 한몸이 되려는 듯 누워 있고, 아시안 여성들은 반대로 태양 차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건으로 머리를 싸고, 긴 소매를 입고,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탐험대 같다. 나이와 국적을 넘어선 문화의 대조, 꽤 흥미롭다.


한편 식당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체형은 거의 예외가 없다. 비만, 비만, 또 비만. 내 간호사 눈엔 반쯤 환자 명단이 보인다. 약통을 쏟아놓고 알약을 한 줌씩 삼키는 사람, 휠체어를 밀며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 종아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 거미줄 같은 정맥류가 드러난 다리들. 그럼에도 그들은 미소 짓고, 웃고, 또 여행을 즐긴다. 나는 그 표정에서 삶의 또 다른 강인함을 본다.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아직 항해 중이다.


이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의지가 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나중에 여유 생기면 여행해야지 하는 말은 너무 위험한 약속이다. 나중엔 그 여유도, 그 몸도 없을 수 있다. 오늘 아침 BBC에서 본 안소니 홉킨스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Just enjoy as much as you can.” 그 말이 단순하지만 이 배 위에서는 유난히 깊게 들린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크루즈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웃고 떠드는 그들의 뒷모습에도 각자의 상처와 시간의 무게가 묻어난다. 멀리선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조금은 쓸쓸하다.


이 여행은 내게 은퇴 후의 리허설 같았다. 느리지만 확실히, 내 미래의 시간을 미리 살아본 셈이다. 결국 깨달음은 단순하다. 너무 오래 기다리다간 배가 떠난다. 인생의 승선 시간은 지금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데크 위에 서서, 커피 한 잔 들고 바다를 본다. 흰 머리의 노인들, 홀로 걷는 여행자들, 비키니와 모자와 약통이 뒤섞인 이 항해의 풍경 속에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나도 이 바다 위에서 조금은 웃으며 살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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