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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 연구 1

by 라온재

크루즈 여행을 두 번 거쳐 오며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 있다. 배마다 흐르는 공기가 다르고, 그 공기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함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배에서는 젊은 승객들의 활기가 밤늦도록 이어지고, 또 어떤 배에서는 은퇴한 여행자들이 조용한 라운지에서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한다. 바다는 똑같이 펼쳐져 있지만, 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의 세대와 속도는 확연히 다르다.


60세 이후의 여행자는 대체로 살아볼 만한 공간을 찾는다. 빠른 움직임보다 안정적인 리듬, 요란한 쇼보다 차분한 음악,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보다 일찍 잠드는 일상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크루즈라기보다 떠다니는 작은 삶의 공간을 원한다. 배가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과 편안한 침대,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여는 식당, 산책하기 좋은 데크와 운동 시설 및 조용한 독서실이 여행의 품질을 좌우한다. 그래서인지 장기 항해일수록 은퇴 세대의 비율이 높아진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일정에서는 서두르는 마음 대신 천천히 익어가는 듯한 시간이 배에 흐른다.


혼자 떠나는 여행자들도 그 속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배에서는 혼자인 것이 어색하지 않다. 커다란 식당에서 혼자 앉아도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도 않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가 언제나 열려 있고, 매일 피트니스에서 땀을 흘리고 명상을 하거나, 조용히 누군가의 공연을 듣거나, 데크를 달리거나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60세 이후의 솔로 여행자들은 종종 이런 혼자의 자유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뒤 시간을 정리하러 오고, 또 어떤 이들은 오래된 일상의 속박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바다는 말을 걸지 않아서 좋다. 그 말 속에는 혼자인 시간의 위로가 담겨 있다.


크루즈 라인마다 이런 감정의 질감이 다르게 흘러간다. 홀랜드 아메리카의 클래식한 분위기, 프린세스 크루즈의 균형 잡힌 편안함, 그리고 노르웨이지언의 자유롭고도 배려 깊은 구성은 특히 장기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다. 배 안에서는 소음이 적고, 도서관과 라운지가 잘 갖춰져 있으며, 하루의 리듬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기항지에 내리지 않아도 큰 아쉬움이 없을 만큼 선상 생활 자체가 하나의 일상이 된다. 바다가 도시가 되고, 식당과 라운지가 삶의 중심이 된다. 그렇게 여행자는 여행 중의 삶을 살아간다.


장기 항해에는 자신만의 리듬이 필요하다. 아침 커피로 하루를 열고, 피트니스에서 스트레칭과 코어운동, 명상 그리고 천천히 데크를 한 바퀴 돌고, 오후에는 강연 하나를 듣고, 해가 질 무렵 라운지에서 잔잔한 음악을 듣는 식이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어줍잖은 손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다. 이런 루틴 속에서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은퇴 이후의 삶을 바다에서 미리 맛보는 듯한 여유가 찾아온다. 며칠이 지나면 배가 하나의 동네처럼 느껴지고, 몇 주가 지나면 자신의 방이 집처럼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잠깐 스쳐 지나가도 묘하게 친근하다. 다들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크루즈를 고를 때 중요한 것은 배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의 속도다. 천천히 흘러가는 배, 소란보다 고요가 많은 배,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배. 그런 배를 선택할 때 비로소 바다 위의 여행은 삶의 연장선이 된다. 은퇴 이후의 긴 항해라면 특히 그렇다.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고, 풍경보다 리듬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 있고, 그 위를 건너는 우리의 속도만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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