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크루즈 항구에 익숙한 여행자라면 한국의 해안에 다가오는 순간 묘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수평선은 넓지만 배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들은 의외로 드물고, 대형 선박이 편하게 정박하기 위한 조건이 흔치 않다. 바다를 끼고 긴 반도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항만으로 쓰기에 적합한 곳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당황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항만 개발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해안선이 가진 지형적 특성과 해양 환경의 조합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해안은 굴곡이 많고, 특히 서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커서 수심 변화가 극심하다. 조수가 빠지면 갯벌이 광활하게 드러나고, 물이 들어오면 다시 깊은 바다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제 항만 운영에 큰 제약이 된다. 대형 크루즈선은 일정한 수심이 유지되는 수역이 필요한데, 간조 시 충분한 깊이가 확보되지 않으면 접안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동해안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여기서는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대신, 접안 시설을 만들 공간이 좁거나 파랑이 거칠어 안정적인 정박이 어렵다. 파도가 항만 안까지 직접 밀려드는 경우가 많아 대형 선박이 정박했다가 손상을 입을 위험도 있다. 남해안은 섬이 많아 아름다운 풍경을 갖추었지만 좁은 수로와 빠른 해류로 인해, 대형 크루즈가 자연스럽게 드나들기에는 까다로운 조건을 갖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 대형 선박이 원활하게 드나들려면 자연의 조건을 그대로 두기보다 손을 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해법이 바로 준설이다. 준설은 항로와 접안 구역의 수심을 인위적으로 깊게 만들어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접근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 작업은 단순히 흙을 퍼내는 수준이 아니다. 바다 밑의 지형을 바꾸고, 해류의 흐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일회성 공사로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유지 관리가 필요한 인프라다. 공사비 역시 막대하고, 준설로 인해 생태계가 일시적으로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나라들이 크루즈 산업의 성장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준설을 감행해왔다. 크루즈 항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수요가 꾸준히 유지되는 교역과 방문의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몇몇 항만은 이런 필요성을 이미 체감하고 거대한 준설과 확장 작업을 지속해왔다. 부산, 인천, 속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항만은 수심을 확보하고 접안시설을 확장해 대형 크루즈의 방문을 늘려왔지만, 여전히 자연 조건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크루즈 전용 터미널을 유지하려면 안정적인 수요가 필요하고, 국내의 계절적 요인과 주변 국가들과의 노선 경쟁도 고려해야 한다. 준설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비용과 효과를 냉정히 비교하는 일이 필수적인 이유다.
하지만 준설의 가치는 단순히 크루즈 한 척을 더 불러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해양 접근성이 좋아지면 화물 물동량이 증가하고, 항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경제 구조도 변한다. 관광, 교통, 서비스업이 확장되며 항구 도시는 점차 활기를 띠게 된다. 무엇보다 바다와 도시는 물리적으로 더 가까워지고, 항구가 생활 공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항만 확장의 차원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바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바다를 깎아내고 지형을 바꾸는 일에는 언제나 신중함이 필요하다. 바다는 인간이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고, 준설은 영구적인 변화를 남긴다. 한국의 항만이 더 큰 배를 맞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바다의 특성을 존중하며 균형을 잡는 과정이 중요하게 남는다. 결국 항만 개발은 자연과 기술의 경계에서 타협점을 찾는 긴 여정이고, 그 속에서 한국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바다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