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나의 여행 루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은 휴대폰의 작은 메모장이다. 여행지든 일상이든, 하루를 글로 기록하는 일은 이제 루틴이 아니라 호흡이 되었다. 단순히 날짜와 사건을 적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 표정, 마음의 결까지 담아내려다 보니 글쓰기는 어느새 나를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수시로 사라지는 순간의 감정과 기억은 적어야 한다. 쓰고 고치고 읽고 고치고… 매일의 기록은 짧지만, 그 짧은 문장들이 쌓여 나의 흔적이 된다. 돌아보면 그 흔적만큼 정직한 지도가 없다. 어디를 거쳐 어떤 사람으로 움직여왔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뿐 아니라 작은 드로잉도 빠지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새로 시도하는 기술이다. 휴대전화에서 손가락으로 선 그리는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흉내 내다보면 언젠가 발전이 있겠지 기대한다. 처음엔 한 컷 이미지로 시작하지만, 익숙해질수록 하루에 있었던 일들이 세 컷, 네 컷으로 자연스레 작은 장면들이 이어져 시퀀스가 되고, 여행의 분위기가 그림으로 표현되기를 기대한다. 글과 그림이 만나 일기 이상의 무언가가 되는 순간이다.
몸을 움직이는 루틴은 기록과 관찰을 더 깊게 만든다. 아침과 저녁 한 시간씩, 요가와 스트레칭, 명상과 걷기를 엮어 만든 두 시간의 운동은 단순한 체력 관리가 아니다. 몸을 열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낯선 환경에서 흐트러진 리듬을 다시 맞추어 주는 고마운 기둥이 된다. 긴 이동으로 굳은 허리와 피로가 풀리면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분해지고, 기록의 문장도 더 명확해진다. 결국 잘 여행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단단해야 하는 것은 체력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느끼게 된다.
언어 훈련은 여행이 주는 자유의 폭을 크게 넓혀준다. 매일 한 시간씩 새로운 언어를 훈련하는 일은 단순한 학습이 아니다. 낯선 문화의 문을 스스로 열어보는 과정이다. 짧은 표현 하나를 익혀도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미소로만 나누던 인사에 짧은 문장이 더해지면 상대의 표정이 달라지고, 그 표정이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곤 한다. 이 작은 연결이 여행의 밀도를 높여준다.
결국 이 네 가지 루틴—글, 드로잉, 운동, 언어—는 크루즈 여행을 포함한 모든 이동의 시간에서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기술이다. 여행은 즐거움이자 변화지만, 변화 속에서도 나만의 중심을 지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록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그림으로 순간을 남기고, 몸을 돌보고, 언어로 세계에 다가가는 일. 이게 심심한 나의 여행의 기술이다.
창조는 여백에서 태어난다.
심심함은 창조의 탄생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