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을 하다 보면 정박지에 가까워질 때 유난히 작은 선박이 한 척 다가오는 장면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여행객들은 대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지만, 그 조그만 배에서 올라오는 사람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는 Pilot 즉 도선사, 즉 항만의 지형과 조류, 수심과 바람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다. 크루즈라는 거대한 배가 부드럽게 항구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단 한 사람의 전문성에 달려 있다.
크루즈는 호텔 같은 안락함과 도시 같은 규모를 가진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항구에 접근하는 순간, 배는 자유로운 바다를 떠나 좁고 복잡한 물길로 들어선다. 수심 변화가 잦고,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꿀 수도 있으며, 항만 바닥의 지형과 침몰선의 위치, 조류가 만드는 흐름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이런 환경에서 선장이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항구마다 배 운항을 깊이 이해한 도선사가 대기하고 있다.
도선사는 작은 보트를 타고 크루즈의 옆면에 접근한다. 배의 높이는 건물 몇 층에 해당하는데, 그는 파도와 바람을 헤치며 배 옆의 철제 사다리를 타고 가볍게 올라선다. 그 순간 배의 항해는 도선사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는 해당 항구의 물길을 매일같이 경험하며 터득한 감각으로, 어떻게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선회해야 안전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지도와 레이더로도 알 수 없는 미세한 변화까지 몸으로 익힌 사람만이 가능한 조종이다.
여행자는 단지 배 위에서 풍경을 바라볼 뿐이지만, 도선사는 항구 하나하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계절마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강하게 부는지, 비가 오면 수심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산호가 자라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그가 선교(bridge)에서 선장과 짧게 나누는 대화 속에는 수십 년간의 경험과 사고 방지의 기술이 들어 있다. 그 몇 마디의 조언이 거대한 선박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어느 항구에서는 도선사가 두 명씩 탑승하기도 한다. 크루즈의 크기가 워낙 거대해 미세한 판단 하나가 전체 안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도선사를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이유는 크루즈가 매일 항구를 오가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배가 항만을 벗어날 때도 도선사는 다시 작은 보트에 옮겨 타고 돌아간다. 그가 철제 사다리를 내려가 작은 배로 건너뛰는 순간의 긴장감은 바다를 오래 다닌 사람에게도 익숙하지 않다. 거친 파도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순간, 그의 직업이 얼마나 위험을 동반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도선사는 늘 담담하게 배에서 내려간다. 다시 또 다음 배를 맞이하기 위해 대기 구역으로 향한다.
여행객이 즐기는 정박지의 평온함은 사실 이 보이지 않는 전문가의 조용한 활약 위에 세워져 있다. 크루즈가 아무 일 없이 항구에 다가와 부드럽게 접안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도선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바다 위를 오가고, 항만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며, 위험을 감수한다. 크루즈 여행의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이 작은 존재의 역할이 숨어 있다. 우리가 항구에 가까워질 때 갑판 난간에서 바라보던 그 작은 배와 한 사람의 점 같은 모습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안전하게 여행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또 다른 항해의 그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