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성, 크루즈에서의 두 달은 내게 단순한 휴식 이상의 깊은 사색을 안겨주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수평선과 매일 아침 맞이하는 새로운 항구의 풍경은 분명 천국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크루즈는 그야말로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안락함의 정점이다. 호텔 같은 객실에서 눈을 뜨고, 정찬 식당과 뷔페를 오가며 산해진미를 탐닉하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정돈되는 일상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를 구현해 놓은 듯했다. 하지만 이 화려하고 평화로운 낙원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뜻밖에도 시간의 잔인함에 대한 성찰이었다.
크루즈 안을 가득 채운 주된 고객층은 백발이 성성한 노년층이다. 그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비로소 얻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자녀들의 손에 이끌려, 누군가는 평생의 과업을 마친 보상으로 이 배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여행을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그들의 속도는 내가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보다 훨씬 느렸고, 수영장이나 공연장 등 크루즈가 제공하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온전히 누리기에는 육체적인 제약이 너무나 커 보였다.
우리는 흔히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돈을 다 모으고 나면이라는 말로 현재의 즐거움을 뒤로 미룬다. 하지만 크루즈에서 마주한 노년의 여행자들은 우리에게 나중이라는 시간이 결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정찬 요리가 눈앞에 펼쳐져도 소화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며, 아무리 화려한 파티와 공연이 열려도 그것을 즐길 기력이 없다면 그저 소음일 뿐이다. 정돈된 침대와 깨끗한 화장실이 주는 안락함도 결국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감각이 생생할 때 비로소 가치를 발한다.
한국의 옛 노래 구절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가사는 결코 방탕함을 권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감각과 육체가 가장 활발히 깨어있는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이자 지혜였다. 크루즈 여행은 분명 천국 같은 경험이지만, 그 천국을 천국답게 인식하고 만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활기가 필요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분들의 시간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지금의 기동력이 얼마나 유한하고 소중한 자산인지를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두 달간의 항해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여행에도 적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은 진리다. 그러나 오늘보다 더 젊고 활기찼던 어제의 나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가 액티브하게 움직일 수 있고, 새로운 환경을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세상의 아름다움을 탐닉해야 한다. 노년의 평온함도 가치가 있겠지만,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즐기기 위해서는 다리에 힘이 있고 심장이 힘차게 뛸 때 배에 올라야 한다.
결국 크루즈 여행은 나에게 현재를 살아라라는 격언을 가장 시각적으로 보여준 현장이었다. 미루지 않는 삶, 지금 이 순간의 활력을 담보로 미래의 안락함만을 쫓지 않는 삶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백발의 여행객들 사이를 지나치며 나는 다짐한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가장 뜨겁게 세상을 감각하겠노라고.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은 서비스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나의 생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천국 같은 여행을 진정으로 천국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의 젊음과 열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