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의 시선, 그 후의 이야기4

아버지의 일기장

by 준희최

안녕하세요

나선의 시선, 뒷이야기 네 번째 글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번 편에서는 본편에 쓰고 싶었지만

결국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실어보려 합니다.


대강의 초안으로 가볍게 써보았습니다.

그저 “이런 내용이었겠구나” 정도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목 : 아버지의 일기장




과거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서랍을 정리하다가,

문득 꺼내 든 오래된 물건이

숨결처럼 미묘한 온기를 품고 있을 때.

그 안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

아직 끝나지 못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장모님 댁 마당에서 아이들이 고양이를 쫓으며 뛰논다.

“널찍한 마당이 있으니 좋구나.”

그런 생각이 스치자,

문득 그 낡은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책장 구석, 손때가 누렇게 묻은 다이어리 한 권이 있었다.

철 지난 기록들 사이로 몇 장의 메모가 삐죽이 끼워져 있었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 한 문장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큰 개를 키우는 꿈.”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늘 무겁고 단단하기만 했던 아버지에게

‘꿈’이라는 단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어쩐지 당황스러웠다.

다음 장을 넘기고 싶은 마음보다

그저 얼른 덮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나는 다이어리를 덮고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마치 봐서는 안 될 비밀을 들춰본 사람처럼.




좌절된 것 같은 ‘꿈’이라는 단어가

이상할 만큼 크게 울렸다.

그 문장에서 나는

아버지의 여린 마음과 부서진 바람을 동시에 느꼈다.


무겁고 차가운 사람이라 믿었던 아버지에게

이런 문장이 있었다는 게 낯설고, 또 서글펐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강인함은 어쩌면

그 꿈을 지키기 위한 성벽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때 서른여덟 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마흔 중반.

이제 나는 못다 한 꿈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현실을 따라가느라 바쁘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그 꿈을 아쉬워하셨을까.

아이들의 웃음이 흩날리는 허공에,

나는 조용히 그 물음을 던져본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우리가 처음 아파트로 이사 올 때 버려졌다.

그 무렵, 우리 집의 가난도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큰 개를 키우는 꿈.”

어쩌면 아버지의 그 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언젠가 아이들이

일상의 작은 한숨들을 조금씩 긁어모아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꿈이 우리가 지나온 날들 속에

여러 모습으로 함께해 왔다는 걸

기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원래 15~19편쯤에서 쓰려던 이야기였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의 글로 넣고 싶었지만,

결국 자녀로서의 ‘나’와 부모로서의 ‘나’를 중심에 놓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세대의 순환과 일상에 스며든 꿈으로 주제가 이어지면

24편의 ‘이별 선언’과 맥락이 어긋날 것 같았어요.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신 분들은

이미 부모님의 입장을 수천 번은 생각해보셨을 테니까요.


오늘은 글이 조금 길었습니다.

잃어버린 꿈이 사실은 일상 속에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다음은 ‘뒷이야기’ 마지막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나선의 시선, 그 후의 이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