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친절한 '설명충' 카메오 작가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온 시바 료타로의 "여담이지만"

by KOSAKA

소설 작법의 가장 고전적이고 보편적인 철칙 중 하나는 작가가 작품 뒤로 숨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가 소설 속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술자의 존재가 투명해져야 하며,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순간 픽션이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은 깨지기 쉽다는 것이 일반적인 문학적 합의다.


이른바 '보여주기(Show)'의 미학이 '말하기(Tell)'를 압도하는 근대 소설의 문법 속에서, 작가는 마치 신처럼 작품 전체를 관장하되 결코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은 이러한 근대 소설의 불문율을 아주 유쾌하고도 대담하게 산산조각 낸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 순간 이야기의 흐름이 멈추고 작가가 직접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와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강렬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마법 같은 개입을 알리는 가장 대표적인 신호탄이 바로 "여담이지만(余談だが)"이라는 마법의 주문이다.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단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치열한 전투 장면이나 역사적 인물들의 긴장감 넘치는 정치적 협상 과정 한가운데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 "여담이지만"이라는 구절에 익숙할 것이다.


막부 말기의 지사들이 피를 흘리며 교토의 밤거리를 내달리거나, 메이지 시대의 장군들이 러시아의 거대한 함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고뇌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술자는 돌연 서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운다.


그러고는 마치 찻잔을 기울이며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혹은 해박한 지식을 주체하지 못하는 노련한 역사학자처럼 등장인물의 가계도나 그들이 머물던 지역의 지리적 특성, 당시의 경제적 상황, 심지어는 백여 년이 흐른 현대 일본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엄격한 문학적 잣대로 보자면 이는 서사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거침없는 서술자의 개입과 여담이야말로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다른 어떤 역사소설과도 구별 짓게 만드는 가장 독특하고 강력한 매력의 원천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기저에는 그가 산케이 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뼈대 깊게 체득한 저널리스트로서의 본능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자는 단순히 일어난 사건의 표면적인 결과만을 전달하는 직업이 아니다.


그 사건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면에 얽힌 복잡한 인과관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독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명확하게 해설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다. 시바 료타로는 소설가가 된 이후에도 이 저널리스트의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역사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취재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해설가적 기질을 만개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독자가 역사적 인물의 행동이나 당시의 시대상을 단편적으로 오해하거나 감정적으로만 소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떤 인물이 특정 국면에서 그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당시의 번(藩) 체제가 가진 구조적 모순, 지정학적 조건, 혹은 그 인물이 읽었던 한 권의 사상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혀내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여담"은 사실 단순한 곁가지가 아니라,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역사적 문맥의 재구성' 작업에 해당한다.


서술자의 빈번한 개입은 소설의 시점을 자유자재로 팽창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낳는다. 시바 료타로의 카메라 렌즈는 어느 순간 이름 없는 하급 무사의 떨리는 손끝이나 낡은 짚신을 클로즈업하며 미시적인 인간의 감정을 포착하다가도, "여담이지만"이라는 한마디와 함께 순식간에 지구 대기권 밖으로 튀어 올라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전이라는 거시적인 세계사의 흐름을 조감하는 버드아이 뷰(Bird's-eye view)로 전환된다.


독자는 주인공의 땀방울을 느끼는 동시에 그 땀방울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격랑 속에서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를 동시에 깨닫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시점의 교차는 자칫 평면적인 영웅담으로 전락할 수 있는 역사소설에 깊은 입체감과 통찰을 부여한다.


독자는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분투하는 개개인의 서사에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동시에, 서술자가 제공하는 냉철한 해설을 통해 그 서사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이성의 거리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독특한 화법은 과거의 역사를 박제된 화석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살아있는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시바 료타로는 과거의 사건을 서술하다가도 불쑥 시점을 자신이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현재(주로 쇼와 시대 후기)로 돌려놓곤 한다.


"이곳은 현재 어느 빌딩이 들어서 있다"라거나, "당시 그들이 보았던 풍경은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식의 개입을 통해, 그는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독자가 발 딛고 있는 공간을 끊임없이 연결한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이 수백 년 전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의 근간을 형성한 생생한 인과율의 과정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역사를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삼으려는 그의 합리주의적 사관이 서술 기법 자체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여담" 속에 시바 료타로라는 인간 특유의 체취와 온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헌책방의 먼지 쌓인 사료들을 트럭째로 사들여 밤을 새워가며 읽어 내려갔을 작가의 모습이, 그 방대한 활자의 바다 속에서 뜻밖의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을 그의 표정이 글 틈새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역사적 진실과 매력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독자 여러분, 이것 보십시오. 참으로 어리석고도 재미있는 인간이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그가 보인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라며 끊임없이 독자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때로는 이념에 미쳐 날뛰는 광신도들을 향한 서늘한 조소가, 때로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이름 없는 합리주의자들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그의 여담 속에 여과 없이 노출된다.


이념적 광기가 일본을 철저한 파멸로 몰고 갔던 태평양 전쟁을 20대 초반의 전차병으로서 뼈저리게 겪어냈던 그이기에, 역사 속에서 합리와 상식을 무시하고 폭주하는 자들을 향한 서술자의 개입은 종종 날카로운 경고와 탄식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문학 평론가들 중에는 이러한 시바 료타로의 스타일을 두고 "소설의 형식을 빌린 역사 에세이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픽션이 가져야 할 긴장도와 형식적 완결성을 작가의 수다스러운 개입이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수천만 명의 독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결함처럼 보이는 수다스러움이었다. 독자들은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읽으며 단순히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쫓아가는 것을 넘어, 시바 료타로라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지적 충만감을 경험했다.


그의 소설을 읽는 행위는 훌륭한 역사 교사의 특별 강연을 듣는 것이자, 삶의 지혜를 통달한 어른의 무릎 밑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포근한 시간과도 같았다.


"여담이지만"으로 대표되는 서술자의 적극적인 개입은 시바 료타로가 단순한 이야기꾼을 넘어 일본 사회의 거대한 정신적 지주이자 '국민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장치였다.


그는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역사를 객관적으로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해석과 가치 판단을 적극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이른바 '시바 사관(司馬史観)'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축조해 냈다.


전통적인 소설의 작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그가 들려주고 싶었던 수많은 여담들은, 어쩌면 어리석은 전쟁의 참화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 했던 전후 일본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지적 위안이자 나침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큰 줄기에서 비켜난 듯 보이는 그 무수한 곁가지들이 모여 비로소 시바 료타로라는 거대하고도 유일무이한 문학적 숲을 완성해 낸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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