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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던지지 않으려면

by 세은


“지금. 지금 손 씻으라고 했어. 전지안!!”


남편의 큰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그토록 소중한 아이의 이름이 화를 가득 머금고 공중을 맴돌았다. 방향을 잃은 채 떠돌기만 하는 그 축축한 이름을 누군가는 붙잡아 짜내야 할 것 같은데. 잘 말려서 다시 아이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러질 못하고 그 축축한 공기 속에서 꾸역꾸역 아침밥을 삼켰다.


”나 지금 하고 싶은 말 너무 많은데 참고 있는 줄만 알아.“


단 1g도 참지 않고 또 다른 화를 잔뜩 적셔 말을 던졌다. 이번에는 내가 남편에게.

5시쯤 어렴풋이 깨버린 아이를 다시 재우느라 아침 운동을 나가지 못했다. 운 좋게도 다시 잠든 아이를 두고 거실로 나오니 비 오는 아침이었다. 어차피 비 때문에 운동은 못했겠다고 생각하면 좋았으련만. 어두침침한 아침은 마음을 더 꼬아버렸다. 운동도 못했는데 우중충하기까지 하네. 나는 이렇게나 찌뿌둥한데 평소보다 어두운 조도 덕에 도롱도롱 잘도 자는 부자가 얄미웠다. 택배 정리를 하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노래까지 틀어뒀는데, 일어날 생각들을 안 했다. 깨우면 됐을 텐데 이상하게 무신경하고 싶은 아침이었다. 말이 퉁명하게 나갈 것 같았다. 퉁명한 목소리보다야 냄비 부딪히는 소리가 낫겠지 하며 묵직한 냄비를 한껏 무신경하게 내려놓았다.



그제야 일어난 두 사람은 늦잠 잔 줄도 모르고 어기적 어기적 기어 나와 우중충한 거실 풍경에 기대어 늦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환히 켜둔 거실 조명에 아이는 눈 부시다며 투정을 부렸고, 남편은 그런 아이 옆에서 멀뚱히 있을 뿐이었다. 평소보다 늦었으니 조금 서둘러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 말도 퉁명하게 나갈 것 같아 조용히 삼켰다. 나는 분주하고 두 사람만 느긋한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흐린 눈을 하고. 이제 그만 손 씻고 밥 먹으러 오라는 나의 말에 재빨리 움직여주면 좋겠는데, 아이는 그러질 못했고 남편은 그런 아이를 좋게 구슬리지 못했다. 내 속은 또 퉁명해졌다.



‘새벽에 잠 설치고 아침은 어두운 데다 평소처럼 충분히 놀지도 못했잖아. 그럼 저럴 수 있지. 저걸 좀 어떻게 잘 구슬리지 못하고 또 성질을 내네.’



퉁명한 속내를 또 한 번 삼켰다. 그리고 삼키는 마음은 점점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나의 얼굴과 목소리는 그 퉁명한 마음을 삼키지 못하고 고스란히 뱉어내고 있었다. 늦는다는 이유로 말 한마디 없이 밥을 먹게 했고, 시간 안에 먹지 못하면 후식은 주지 않겠다는 협박도 했다. 남편에게 흘러넘치는 그 마음을 신경질적으로 주워담아 집어던졌다.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화를 내버린 아침이었다. 단 1g도 삼키지 못하고.

아이에게 늘 말한다.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언제든 화날 수 있어. 그런데 그 화는 내 마음속에 있는 거잖아?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한테 던지면 안 돼. 그렇다고 나한테 던지는 것도 안돼. 던져버리고 싶겠지만 던지지 말고 토닥여주는 거야. 허공에 소리를 질러서 날려버려도 되고 스스로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아. 그러면 편안해져. 엄마 말이 맞나 안 맞나 한번 해봐”


사실 나도 못하는 일이다. ‘화’를 다스리는 일이 익숙해지는 날이 오긴 할까.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라 너는 한번 해보라며 아이를 부추겼다. 자신이 없으면 말이 길어진다고 했던가. 제대로 날려버리고 편안해본 적이 없으니 늘 나의 가르침에는 그림자가 길었다. 스스로에게도 없는 믿음이 아이에게는 있길 바라며.



하지만 나는 고작 날씨 하나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언제쯤이면 가르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아이가 나를 보며 크면 좋겠는데, 그러기는커녕 아이를 따라잡기도 숨차다. 나의 화는 어쩜 이리도 치사한 것인지, 갈 곳 잃을 때마다 가장 화내고 싶지 않은 이들을 향해버린다. 어떤 화를 던져도 다 받아줄 가장 든든한 사람을 향해. 아무리 화를 내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가장 작은 아이를 향해.



날씨 정도는 참아내고 싶다. 퉁명한 마음이 기어코 화가 되어버리기 전에 툴툴 털어내면 좋겠다. 소중한 이들에게 화를 던지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나에게 던지다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도 싫다. 토닥이고 날려버리고 기다려서 편안해지고 싶다.


화를 던지고 난 자리엔 늘 이렇게 후회가 남는다. 남은 하루는 이 후회를 잘 어루만져야지. 충분히 후회하고 반성하면 내일은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겠지. 그리고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두 사람에게 사과해야겠다. 내가 던진 화에 대하여. 날씨 때문이라는 둥 늦장 부리는 게 싫었다는 둥 변명 뒤로 숨지 않고, 화를 함부로 던져서 미안했다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축축해진 마음을 잘 말려서 반듯하게 돌려주는 일. 다 받아주는 사람일지라도. 그럼에도 사랑해 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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