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야기 15] 사업가에서 쪽방까지

실패를 지나 다시 걷는 사람의 하루

by 진형

저는 서울 사람이 아닙니다. 고향은 강원도 춘천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녔고, 그 이후의 직장생활과 사업도 모두 서울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삼성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 뒤 무역센터에 있는 외국계 회사로 옮겼고, 1989년에는 직접 컴퓨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한창 잘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 12월 27일, 그날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때는 법인 부도가 엄청나게 많던 시기였습니다. 제 사업 자체는 잘되고 있었지만, 납품한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서류상으로는 흑자였지만 실제로는 적자가 쌓이고 있었고, 결국 컴퓨터 사업을 6년 만에 접게 되었습니다.


그 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함께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 돈을 모은 뒤, 90년대 말에는 무역 사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또다시 무너졌습니다. 저는 슬하에 일녀일남을 두고 있었는데, 아내와 헤어지면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지방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조금 모았고, 2014년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다시 한번 사업을 해 보았지만 2019년에 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등산을 하다가 넘어져 국립의료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이곳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이 동네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내와 헤어지게 된 과정도 복잡했습니다. 2004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사업 문제로 은행 대출과 세금 문제가 겹쳤습니다. 당시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도 아직 어렸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위장 이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방으로 내려가 살게 되면서 점점 연락이 줄어들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과만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힘든 시기에도 저는 일을 하며 버텼습니다. 저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사업을 해 왔기 때문에, 몸을 쓰는 노동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형광등 하나 갈아본 적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생계를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버티다 보니 결국 승진도 빨리 하게 되었고 남들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결국 결실이 따른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 하루는 규칙적으로 흘러갑니다. 저는 보통 새벽 5시 전에 일어납니다. 뉴스를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합니다. 6시쯤이면 집을 나섭니다.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합니다. 요즘은 공기가 좋지 않다고 아침 운동을 말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꼭 운동을 합니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골라 걷다 보면 하루에 2만 8천 보 정도 걷게 됩니다.


제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건강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지만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국립의료원에서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 전날에는 혹시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걱정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올해와 내년까지 건강을 잘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소식을 여기저기 알리니 다들 축하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소주 드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가평에서 오신 수녀님도 축하해 주시면서 술을 끊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열흘 넘게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신부님과 한 약속도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해피인에서 독서 모임을 했습니다. 책을 읽고 서로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이 제가 쓴 시를 읽게 되었고, 시집을 내 보자고 권했습니다. 명동성당에 계신 신부님인데 시나리오 하나만 써 달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시를 조금 쓰곤 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칠순을 건강하게 맞이하게 된다면 제 인생을 담은 자서전적인 시집을 하나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시상이 떠오르면 시를 한 편씩 쓰고 있습니다.


제가 쓴 시 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가을,

그 가을은 또다시 왔건만

오늘도 어김없이

타락한 영혼들의 술주정 소리에서 잠을 깬다.

방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타락한 영혼들이 사는 이곳에서는

단풍마저 시커멓게 물이 든다.


이 시는 새벽에 술주정 소리에 잠에서 깨서 밖으로 나왔을 때 떠오른 생각에서 시작된 시입니다. 시는 굉장히 길고, 한쪽 팔이 없는 창녀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제 휴대폰 카카오톡에는 “함께 같이 나눔”이라는 방이 있습니다. 저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청년들과 함께 서울역에서 김밥이나 간식을 나눕니다. 월요일에는 수녀님과 함께 봉사를 합니다. 토요일에는 도시락을 만들어 서울역에 가서 노숙인들에게 점심을 나누어 드립니다.


또 가끔은 음성 꽃동네 수사님과 수녀님들도 오셔서 음식과 옷, 신발 등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저는 늘 같은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선진국이 되어도 노숙자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노숙하는 사람들이 따뜻한 곳에서, 시원한 곳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