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라 불리던 남자의 20년
나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어. 기성회비 한 푼 안 냈는데도 선생이 뭐라 못했어. 문제만 나오면 그냥 쓱쓱 풀었고, 기억력도 끝내줬지. 그땐 진짜 박사감이라는 소리 들을 정도였어. 말만 그런 게 아니야. 나 자신이 알았어. 나는 남달랐다고.
그런데 인생이 머리 하나로만 굴러가진 않더라. 초등학교 때였지, 운동회 날 높이뛰기 하다가 발바닥을 다쳤어. 점프 잘못 뛰고 내려오다가 땅에 제대로 떨어지지도 못했어. 그 순간 알았지. '아, 운동은 내 길이 아니구나.'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았어.
“공부로 가자. 이 길밖에 없다.”
공부는 잘했지만, 성격이 얌전하진 않았어. 싸움도 잘했지. 어릴 땐 그랬잖아. 코피 터뜨리면 이기는 거. 나는 누구한테도 안 졌어. 누구 하나 시비 걸면 그냥 주먹부터 나갔고, 맞고 다닌 기억이 없어.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니까.
스무 살쯤엔 공군 본부 시험을 쳤어. 처음엔 전형 탈락이라더라고. 뭐 서류 미달 어쩌고 저쩌고. 오기가 생겼지. 다시 시험 쳐서 결국 붙었어. 군생활은 잘했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주 기깔나게 했지. 당시 넥타이 딱 매고, 체격 좋고, 키도 크고, 얼굴도 받쳐주니까 밖에 나가기만 하면 여자들이 그냥 줄을 섰어. 지금이야 웃기지만, 그땐 진심으로 대한민국 여자 손 다 잡은 줄 알았어.
"11시는 김양, 12시는 오양, 1시는 박양"
뭐 이런 식이었지. 그 시절? 그냥 개판이었어. 나는 내가 세상 중심인 줄 알았거든.
근데 말이야, 군대 제대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어. 죄짓지 말자. 신용불량자도 되지 말고, 폭력도 쓰지 말자. 딱 마음먹었어. 경찰이 그렇게 무서워 보일 수가 없더라고. 근데 내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게 인생이더라.
회사 들어갔지. 거기서 다방 마담들, 아가씨들 줄줄이 엮였어. 내가 돈도 잘 벌었거든. 월 200, 300 벌었는데, 집엔 한 푼도 안 갖다 줬어. 다 바깥 생활에 써버렸지. 술, 여자, 쇼핑, 그야말로 돈은 물 쓰듯 나갔고, 결국 손에 남는 건 없었어.
결혼도 그렇게, 정신없이 했지. 여자들이 많다 보니 제대로 구별도 못했어. 그렇게 얽히고설켜서 아이 둘을 뒀어. 애들은 내가 “두 마리”라고 불러. 웃기지? 정을 못 줬단 뜻이야. 큰애 태어났을 때 병원에도 안 갔어. 예쁜 건 알았지만, 내 인생도 엉망이라 그런 걸 챙길 겨를이 없었어.
처남새끼는 또 어땠게. 술만 사주면 “형님, 형님” 하다가 어느 날 수표 들고 도망가버렸어. 내 수표였는데. 그 새끼는 그냥 사라졌고, 결국 여자는 나보고 "당신 없어도 산다."라고 하더라고. 그 말,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그리고 진짜 그렇게 살더라. 애 둘 데리고 야쿠르트 팔고, 공장 다니면서, 악착같이 살았어. 그거 보면 또 내가 한심하고 미안하고.
그렇게 살다가 IMF 때 껄떡거리던 인생도 끝났지. 돈도 일도 다 날아가고, 남은 거라곤 빚뿐이었어. 서울로 올라왔어.
돈 10만 원 쥐고.
서울역 도착해서 갈 데도 없고, 잘 데도 없었어. 남산 벤치, 여관, 지하도… 다 전전했지. 거지나 다름없었어.
그렇게 거리를 떠돌다 보니, 사람도 별별 인간을 다 만나. 그러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중국집에 일하는 한 놈을 만났어.
“짱개”라 불렀지.
그 양반이 말했어.
“여기 방 하나 있는데 같이 자봐요.”
그 말 듣고 따라갔고, 그게 이 쪽방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어.
그 형님, 의리 하나는 끝내줬어. 하루 벌면 하루 다 나눠. “오늘 20만 원 벌었으면, 우리 셋이 밥 먹자” 그런 식이야. 밥 사고, 술 사고, 껄껄 웃고. 같이 자고, 같이 깨고. 그게 정이더라. 나는 그 형님 통해 처음 ‘사람’ 다운 대접을 받았던 것 같아.
그렇게 이 동네에 들어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 별의별 일이 있었지. 도박판 돌아가고, 피 터지는 싸움도 있었고, 경찰도 자주 들락날락했지. 누군가 죽은 적도 있어. 시신 치우는 데 같이 가봤고, 뒷정리도 해봤어. 개지랄 맞은 인생이었지. 근데, 여기 사람들은 이상하게 정이 있어. 지랄하면서도 서로 밥은 나눠 먹고, 담배도 같이 피우고, 힘들면 슬쩍 눈치 봐가며 도와줘.
이제 아파트 들어간대. 말은 다 됐다는데, 나는 아직도 망설여. 20층짜리 아파트? 솔직히 겁나. 혹시 무너지면 어쩌나. 비 많이 오고, 땅 꺼지고, 무슨 부실공사라도 나면? 그거 생각하면 그냥 여기 있는 게 편할 때도 있어.
내가 술 끊은 지는 6~7년 됐어. 끊고 나니까 돈이 남더라. 쓸 데가 없어. 커피, 담배 그거 말곤 돈 나갈 일이 없거든. 재난지원금도 그냥 쌓여가. 처음엔 600만 원 모으기도 힘들더니, 지금은 1000만 원도 넘었어. 내가 이렇게 돈 아껴 쓰는 건, 이제라도 뭔가 제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나는 이제 도와주면서 살고 싶어. 물론 아무나 도와주는 건 아니야. 도박쟁이, 경마장 들락거리는 놈들? 그런 놈들한텐 50만 원 줘도 헛소리나 하고 돌아와. 그런 놈들은 질색이야.
근데 진짜 땀 흘리는 사람, 병든 몸 끌고 폐지 줍는 사람, 그런 사람 보면 뭐라도 하나 사주고 싶어. 옥수수 한 봉지, 커피 한 캔, 그것도 마음이거든. 근데 또 요즘 사람들, 그걸 잘 안 받아. 그러면 내가 한마디 하지.
“야! 내 돈은 썩은 돈이냐, 니들은 왜 안 처먹노?”
그게 내 마음이야. 나도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고, 사람처럼 대하고 대접받고 싶어.
지랄 맞은 인생이었지. 근데 그게 내 인생이야. 누가 대신 살아준 적도 없고, 대신 맞아준 적도 없어. 내가 버텼고, 내가 살아냈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고, 또 하루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