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야기 13] 막걸리 두병

바다에서 서울역까지

by 진형

나는 백령도서 태어났어.

어릴 땐 그냥 그 섬이 세상의 전부였지. 육지란 건, 배 타고 나가야만 갈 수 있는 먼 세상 이야기였고. 형제는 많았어. 육녀일남, 누나 넷에 동생 둘, 나는 다섯째. 근데 외아들이라는 거, 알지? 딸들만 많고 아들은 나 하나.


고등학교? 졸업 못 했지. 다니다가 그만뒀어. 이유야 뭐… 그때 얘기 꺼내면 길어. 어쨌든 나는 공부보단 바다에 나가서 돈 버는 게 더 빠르다 생각했거든. 해병대 방위 끝내고 배를 탔어. 고기잡이 말이야. 8년이나.


근데 웃기는 게 뭔 줄 알아? 내가 벌어온 돈, 한 푼도 못 썼어. 그때 월급식으로 받았는데 지금 돈으로 한 달 300은 됐을 거야. 그 돈을 우리 아버지가 죄다 가져갔다니까. 아버지가 원래 그런 사람이야. 고기 잡아 오면 선장 부인이 팔아주고, 그걸 모아서 선장은 절반, 나머지는 일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데, 내 몫은 전부 아버지 술값으로 들어갔어. 내가 스물세 살 때였는데도, 담배 한 갑 살려고 돈 달라 하면 “어린놈의 새끼가 돈! 돈! 하면 안 된다!”며 귓방망이를 갈겨.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


그래서 스물여섯에 섬을 나왔어. 장가갈 생각이었거든. 근데 우리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백령도 사람들은 우리 집에 딸 안 줬어. 외아들이어도 소용없었어.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모아놓은 땅이며 재산이며 다 팔아먹었거든. 술로 다 날리고, 안주빨도 없는 사람이었어. 나는 안주라도 먹는데, 아버지는 그냥 술만.


인천으로 나와서 마누라를 만났어. 동생 친구였지. 동생이 재봉사 일을 하는데, 거기 반장이 내 아내가 될 사람이었어. 주말마다 나를 보러 왔고, 나를 좋아했어. 그래서 딸 둘 낳고 20년을 살았지. 나는 그때 건설현장에서 일했어. 일이 많았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꽉 채워서. 외아들이라 아들 하나 낳아보려고 했는데, 첫째가 89년생, 딸, 뱀띠야. 아버지가 꼴도 보기 싫었지만, 그래도 제사 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10년 뒤에 하나 더 낳았는데, 또 딸이었어. 막내가 두 살 때 헤어졌지. 왜 헤어졌냐고? 그 얘긴 안 할게.


헤어질 때, 부평 빌라 1억 3천짜리, 내 전 재산 다 주고 나왔어. 빈손으로 나왔다는 얘기야. 그 뒤로 전국 떠돌았어. 부산, 경상도, 천안, 수원… 나 모르면 간첩이야. 밥 얻어먹는 건 하지도 않았어. 내가 돈 벌어먹었으니까.


서울역 쪽에 온 지는 한 15~16년 됐을 거야. 여기 오기 전에 쌍둥이 엄마 집에서 5년 살고, 다른 방에서 5년 살고, 그러다 이 쪽방으로 온 거지. 여기서 기억나는 건? 죽은 사람들뿐이야. 정만호, 박태수, 이광호, 육군 중사… 좋은 기억은 없어. 한 개도 없어. 사람들 그렇게 죽는 거 보면서, 나도 그 꼴 날까 싶어서 술을 바꿨어. 소주에서 막걸리로. 50대 초반부터였지. 막걸리 두 병 사서 한 병은 마시고, 나머진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 날 마셔.


이제 곧 새 집으로 이사 간다는데, 새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아파트도, 새로 지은 집도. 내가 살던 부평 빌라도 남이 살다 간 집이었어. 이번엔 처음이야. 기분? 좋지. 나는 평생 여기서 뼈 묻을 거야. 딸 둘이 있지만, 제사 지낼 놈도 없고. 그래서 내 몸은 기증하기로 했어. 피부도, 시신도. 화상 환자들 많잖아. 껍데기라도 써야지. 죽으면 의대생들이 실험용으로 쓰고, 남은 건 필요한 데로 가는 거지.


나는 세상에 감사하는 사람이야. 고생은 많이 했지만,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