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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H Jun 27. 2020

3,000만 원 벌었어

그저 빛을 향해 걷자

 금요일 밤 4호선 마지막 열차에는 말소리가 없었다. 멈추지 않는 말발굽처럼 쇠바퀴가 굴렀고 텅 빈 손잡이들이 철컥 철컥 흔들리고 있었다. 전철들을 간신히 잡고 있는 이음새가 삑삑삐익 짖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소음이 가득했지만 적막했다.

 삐걱대던 적막은 금정역에서 깨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인 남자였다. 까만색 백팩까지 멘 그의 목소리가 적막 속으로 떨어졌다. 중심을 자주 잃어버리는 비틀거림에서 약간의 술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백수지~ 그래도 한 3,000만 원 원쯤 벌었지. 원하는 만큼 번 것 같아. 그래서 만족해"

 격양되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3,000만 원이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귀를 뚫고 들어왔다. 전철 문의 작고 네모난 창 밖에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몇 안 되는 가로등 불빛이 흘러가고 있었다. 금세 전철은 터널의 깊은 어둠에 잠겼다.

 통화가 끝난 남자는 이내 전철에서 내렸다. 한동안 꺼진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며 뭔가를 곱씹는 듯한 그의 입모양이 잔상처럼 남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향해 어쩌면 끝을 모르는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없는 듯 느껴지지만, 가끔 어둠 너머의 희미한 불빛들이 보인다. 금세 사라져 버리지만 불빛들은 언제고 다시 나타난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불빛들을 보며 기뻤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때론 빛 한 점 없는 터널 안에서 그 좌절은 더 깊어진다. 견디고 걷자. 때로는 달려보자. 빛은 언제고 나타난다. 기분 좋은 찌푸림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더 크고 더 밝은 빛이 어느새 눈앞에 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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