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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H Jul 21. 2020

새는 나아간다

 청량리역 광장이었다. 서로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이 엉켜있었다. 그 위를 날아가는 검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매끄럽지 못했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 퍼덕거리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연처럼 속도는 줄고 높이가 들쭉날쭉했다. 한쪽 날개를 다쳤는지 좀처럼 시원하게 날지 못했다.


 잠시 멈춰 위태롭게 멀어지는 검은 새를 바라봤다.


 지금쯤이면 부드럽게 바람을 타고 있을까. 일주일도 더 지난 일이니 그럴 거라 믿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고.


 퍼덕거리다 끝난 것 같은 날이 있다. 이룬 것 하나 없이, 도무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깊고, 어둡고, 메마르고, 온통 가시밭 투성이에,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으로 몰아붙이는 그런 날이 있다.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해 뒷걸음치고 싶기만 한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둠 속에 떨어지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한 걸음 물러나 퍼덕거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가까스로, 위태롭게 보낸 날들을 돌아봐야 한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날갯짓은 아니지만, 떨어지지 않고 나아가는 그 날갯짓을 봐줘야 한다.


 위태롭게 멀어지던 검은 새가 아른거린다.


 새는 결국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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