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학씨아저씨

-유퀴즈를 보며-

by 도피라이터

유퀴즈에 나온 학씨아저씨를 봤다.

[폭싹 속았수다]를 찍으며 노인이 된 학씨아저씨 분장을 했을 때

자신의 아버지가 스쳐지나가서 많이 울컥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무명이었던 어느 날,

연기를 선택한 자신이 흔들렸던 어느 날,

그 고민이 표정에 드러났던 어느 날,

들어오는 그를 보며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연기 뭐 어려워? 봄. 어? 이렇게. 여름. 어? 이렇게. 가을. 어? 이렇게. 겨울. 어? 이렇게"

간단한 제스쳐와 표정연기를 계절에 맞게 보여주던 그의 아버지.


당시 최대훈 씨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한숨만 내쉬고 들어가버렸다고 했다.


아마도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했기에

'연기 뭐 어려워?' 라는 말이 그를 나무라는 것처럼 느껴졌겠지.

그리고는 지금 그 때를 후회한다고 했다.


그 때, "맞아요. 아버지. 연기의 시작은 그거에요. 잘하시는데요?" 라고 대화를 해 볼걸.

그 너스레 한 번이 뭐가 어렵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는 연기호흡을 맞추며 잘도 대화하면서

내 가족이자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는 왜 그렇게밖에 못했는지.


그렇게 말하는 최대훈씨(학씨아저씨)를 보자마자 생각이 많아졌다.


어쩌면 그때 그의 아버지는 힘들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아버지식 위로를 표현했던 게 아닐까?



[응답하라1988]에 보면 택이가 대국에서 진 날, 동네친구들은 그를 놀렸다.

그리고 택이는 처음으로 분노를 내보였고 속이 시원했는지 풀렸다.


위처럼 그의 아버지도 친한친구처럼, 누구에게도 말 못하며 힘들어하는 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자기는 항상 옳고 너는 틀려먹었다고 표현하는 우리 아빠.

아빠랑 얘기하면 항상 끝은 말싸움이고 아빠가 먼저 자리를 피한다.


어쩌면 우리 아빠도 표현이 거칠 뿐, 그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먼저 자리를 피하는 이유는

사실 싸우고 싶지 않아서. 이기고 싶지 않아서 아닐까?


아마 자기도 표현이 거칠다는 것을 알겠지.

아무도 자기 얘기를 안 들어주니까 더 거칠게 말했을 것이다

마치 사랑받고 싶어서 금쪽이가 되어버린 꼬마처럼.


그리고선 매번 자기때문에 상처받는 가족들을 보며 혼자 힘들어했다.



최대훈 배우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리 아빠도 뇌졸중으로 우뇌가 터졌었다.

골든타임을 아슬아슬하게 지켜서 다행히 살아계시지만

우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감정조절을 잘 못하신다.


참 사람이 간사하지

살려만 달라고 빌 때는 언제고.


내가 알던 다정한 아빠가 아니게 되니까

많이 미워했다.

아픈 걸 알면서도 미워했다.


그런데 나도 그 때 나이 중2였다.

너무 큰 일이라 사춘기 때 제대로 의사표현조차 못하고 꾹꾹 눌러왔고

아빠의 못된 말들을 성장기때 들으면서 컸다.


그래서 30대가 된 지금도

아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마음그릇이 넓어지지 못하고

예전 상처들이 무의식 속에 흉터로 남아서

나 또한 말이 예쁘게 안나간다.


우리 집에도 학씨아저씨가 산다.

그를 좀 더 사랑해 줄 방법을 여전히 찾고 있다.

하나의 캐릭터로 '학씨'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그저 하나의 캐릭터로 그를 사랑해주고 싶다.


지금도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우리 집 학씨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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