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회,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 인간의

by 방정민

♣ 나는 어떤 사회,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 인간의 본성과 사회 비평


내 인생은 인문학과 같이 한 삶이다. 35년 동안 참 무던히도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문과 머리라 인문학 외의 학문은 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인문학 연구를 평생 했다. 철학과 문학, 사회학, 문학치료학, 예술문화영상학 등을 공부하면서 내 인생을, 젊음을 보냈다. 이 지면에서는 인문학과 함께 한 고달픈 내 인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자로서 우리사회를 고찰하고자 한다. 사회를 진단하고 성찰하며 비판하는 것도 학자의 역할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서 근대를 다 다룰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말하면, 근대는 3천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왕조시대를 끝내고 일반서민, 즉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태동시켰다. 그래서 당시 학자들은 너무 황홀해하면서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을 확고히 가졌다. Democracy를 일본학자가 민주주의라고 잘못 번역했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인문학을 배운 우리 선조들이 그대로 이 단어를 수입해 쓰면서 아직도 민주주의라고 쓰고 있어 나도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민주주의라고 쓰고 있는 Democracy는 정확히 민중통치라는 말이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이 나라를 통치하는 제도라는 의미이다(참고로 한 사회는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이고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다. 이론적으로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것이 전체주의 내지 귀족정이고 현실적으로 대립되는 것이 사회주의이다.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것이 공산주의이다. 즉 공산주의는 경제체제이지 정치체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빨갱이 공산주의라고 말하거나 아직도 중국을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무지의 사람들이 많다. 중국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강조한 79년부터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공산주의를 폐기하고 자본주의를 경제체제로 하고 있다. 다만 정치체제가 서유럽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산당 일당독재인 중국식 사회주의를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독일은 약한 사회민주주의이고 북유럽은 강한 사회민주주의국가(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 사회민주주의- 개인의 자유가 확립된 나라에서 모든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치제도로 우리나라도 북유럽식 사민주의로 가야 한다. – 이다)이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노예, 여성, 이주민 등을 빼고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이용한 한계를 노출하였지만, 근대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 즉 피의 대가로 획득한 위대한 제도다. 그래서 당시 학자들은 인간의 위대성을 믿고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을 굳게 가진 것이다. 즉, 민주주의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전제로 출발한 정치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과연 인간에게 합리적 이성은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동물의 왕국처럼 힘센 나라가 힘 약한 나라를 무력으로 빼앗고 그 나라의 국민을 죽이고 겁탈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인간은 역시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했는가. 근대를 열었을 당시 인간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고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강한 회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백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인간은 어떠한가? 유언비어는 옛날부터 있어 왔지만, 요즘엔 유언비어를 넘어 가짜뉴스, 의도된 왜곡뉴스ㆍ혐오뉴스,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에 중국 공산당이 개입했다고 믿고 자기들이 지지하지 않는 당이 이기면 부정선거라고 떠들어대는 인간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나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온갖 모욕적인 말을 해대며 비웃는 인간들, ‘계집신조’놀이를 하며 여자들을 하인처럼 취급하려는 일베와 펨코 남자들, 21세기에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내란수괴를 열렬히 응원하는 독재찬양ㆍ 반민주주의자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극우와 인종차별주의자, 반민주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백여 년 전 학자들이 현재 지구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판단할까? 그래도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백여 년 전보다는 낫다고 할까?

다행히 우리나라는 용기 있는 국민과 제정신을 가진 국민들이 있어 위기를 그럭저럭 잘 넘기고 있다. 특히 지난 겨울 12.3 내란 때 바로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의 총부리에 맞선 국민들, 남태령 농민을 지킨 여성들, 한겨울 매일 찬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며 응원봉으로 계엄을 물리친 국민들이 있어 아직은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말해주는 지표는 결코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위의 극우들 문제가 아니라도 낮은 출산율, 사라져가는 지방과 지방대, 더욱 벌어지는 양극화, 낮은 성장률,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 문제, 세계 1위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갑질과 차별, 혐오문제 등등 일일이 셀 수가 없다. 정말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비합리적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 평화를 꿈 꾸며 민주주의를 인류역사상 처음 연 그때의 인간은 어디 갔는가? 문화인류학자에 의하면 인류, 즉 호모사피엔스는 구석기 이래 두뇌가 1%도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지 의문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천민자본주의인 한국에서는 인문학, 특히 철학을 비웃고 비아냥거리지만, 사람은 누구나 철학을 배워야 한다. 철학 시간에 인간의 ‘사고의 틀’이라는 것을 배운다. 사람은 ‘상식-과학-철학-종교’라는 틀로 사고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에 현혹되고 미신과 혐오,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것이다. 설명하면, 상식이 제일 중요하다. 상식에 맞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판사가 형사소송법을 어겨 내란수괴를 풀어주는 일도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판사가 과연 정의로울까? 판사가 정말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까? 지난 5월 대법원(장)이 대선에 끼어들어 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하려는 행위를 보라. 판사는 일종의 공복(公僕)이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는 노예(심부름꾼)라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시스템이자 정신이다. 그런데 거꾸로 한국에서 판검사는 스스로 엘리트로 생각하며 국민을 노예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니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을 여러 건 하며(이재명 공직선거법 3심 판결을 2심 끝난 후 20여 일 만에 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 나라의 운명이 걸린 대법원 판결에서 2심의 사건기록도 보지 않고 판결을 하는 점, 사법에는 ‘소극성’내지 ‘자제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선거가 있는 기간에는 판결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참정권을 빼앗는 꼴이 되는 것이다. 트럼프도 수십 건의 수사와 판결이 있었는데 선거 기간에는 중지되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선거에 명백히 개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학력이 높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상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다.

그러나 상식은 문제가 있다. 가령, 19세기 전까지 모든 지구인의 상식은 지구는 평평하고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상식의 한계다. 그래서 과학을 배워야 한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 제정신인 사람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아닌가! 예를 하나 더 들면, 지구에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상식은 있는데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때 천체물리학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우주는 무한대다. 무한대인 우주에 지구인 이상의 지적 생명체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온 외계인은 상상할 수가 없다고 한다. 태양계에서는 인류 이상의 지적 생명체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면 우리은하(태양계의 수천 배 또는 수억 배) 밖에서 우주선을 타고 와야 하는데 그 기간을 계산해 보니 최소 2만 년 걸린다고 한다. 거기다 그 행성의 대기권과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해 지구에 오려면 그 추진력이 엄청 커야 하기 때문에 핵폭탄 수천 개를 터뜨리고 올 정도라고 한다. 즉, 지구에 오기 위해 자기들 행성을 폭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고 지구에 우주선을 타고 오는 외계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선을 타고 오는 외계인이 있다면 아마 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즉, 우주를 다스리는 정도의 문명이 발달한 존재인데 그것이 가능할까? 아니, 이것을 떠나 상식적으로 이렇게 어렵게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왔는데 왜 당당히 안 밝히겠는가? 몰래 왔다가 몰래 가버린다고? 아니면 몰래 지구에 숨어 산다고? 이것이 상식에 부합하는가!


아무튼 상식과 과학적 지식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학이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철학이 이것을 해결한다. 철학은 합리적 이성을 전제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학문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철학 이전에 상식이 먼저고 다음 과학적 지식이라고 했다. 그 후 철학적 사고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철학은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이다. 철학은 주술과 미신, 비논리를 철저히 배제한다. 그래서 애매성(일종의 중의성으로 한국어 ‘눈’은 ‘snow’, ‘eye’, ‘bud’의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어느 것을 말하는지 불분명할 때)과 모호성(경계가 불분명한 것으로 일종의 대머리 논쟁이다. 대머리를 정의할 때 머리카락 몇 올이 빠져야 대머리인가, 라는 것이다)을 배제하고 철저한 논리와 논증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학문이다. 가령,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난다’고 할 때 동쪽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한 것, 그리고 귀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귀인의 애매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동쪽으로 가서 귀인인 최 씨를 만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주술사가 있어 억지로 동쪽으로 가서 최 씨를 만났는데 몇 개월 후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있다. 그 주술사(관상가 또는 법사)를 찾아가 항의를 했더니 주술사가 하는 말이 그 사기로 인해 당신이 인생을 배우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최 씨가 귀인이라는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이것이 애매성과 모호성이다. 사주팔자 봐준다는 주술과 관상은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통령이 윤석열이라고 유명한 관상가가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윤석열은 2022년 대선 때 손바닥에 왕자를 쓰지 않았나. 그 결과 어땠는가? 역사상 가장 끔찍한 내란수괴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미신, 주술의 모습이다. 비논리, 무논리, 비합리가 바로 주술인 것이다.


이렇게 상식과 과학과 철학적 사고를 한 후 마지막에 종교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종교가 현대에 맞는 종교가 되는 것이다. 현대의 종교란 가장 낮은 위치에서 버림받고 아파하는 사람을 껴안고 보살피고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의 종교 역할이다. 그런데 현재의 종교가 그러한가! 다시 말하지만, 상식과 과학과 철학이라는 이성적 사고를 철저히 하고 난 후 이성을 초월한 종교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21세기 다운 종교가 되는 것이다. 현재는 중세가 아니다. 종교가 사회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 종교와 정치가 철저히 분리된 시대다. 거기다 민주주의 시대다. 국민이 주인인 시대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유일신 사상을 교회 안에서 믿어야지 교회 밖에서까지 강조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불교를 믿는 신자와 스님, 부처는 사탄인가? 그렇기 때문에 바로 상식과 과학, 철학, 그리고 민주주의를 철저히 공부하고 난 후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세처럼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서 최근 종교가 정치를 하고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노예로 삼고 있다. 중세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면, 그리고 21세기면 21세기답게 종교를 믿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아 너무 안타깝다. 기독교를 믿는다면서 주술에 빠진 대통령과 영부인 때문에 우리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비용이 얼마인가? JMS 같은 사이비 종교가 번성하고 있고 종교가 정치를 하면서 중세처럼 혐오와 가짜뉴스, 음모론과 분노를 종교 스스로 남발하고 있다. 사회는 혼란의 도가니탕으로 빠져들고 있다. 마치 중세를 보는 듯하다. 여기에는 통일교, 신천지 같은 이단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통 개신교가 어쩌면 더 심하다. 미국의 마가(MAGA) 극우와 연결하여 온갖 음모론을 퍼트리고 사회를 분열로 내몰고 있다. 이런 정치행동주의를 선동하고 있는 개신교는 보수도 아니다. 아스팔트 극우(태극기 부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와 하나가 되어 친일친미 매국적 성향을 띠며 독재찬양, 반민주주의, 인종차별, 혐오를 조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 개신교들은 방관자로 비겁한 자들이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인간의 본성 문제이다. 과연 인간은 합리적 동물인가? 인간의 본성은 얼마나 악한가? 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사회라면 판사와 검사도 이 인간의 상식에 맞는 수사와 판결을 해야 하고 종교를 믿는 사람도 합리성 이성을 가진 채 각자의 종교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그러니 사회가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 아닌가!


절망과 희망이 언제나 혼재하는 것이 사회이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인류의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기후위기라는 거대담론에 대해 지구인이 힘을 합쳐 극복해나가기도 벅찬데, 현재 전 세계에 반민주와 극우와 혐오의 정서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이런 지구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의도된 가짜뉴스와 혐오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는 우리 사회가 허용할 제도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강력 처벌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당장 만들어 실시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 사회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세워야 한다. 반도체, AI 같은 분야는 예산을 투입해 전문가와 그 분야를 성장시키면 된다. 전 국민이 반도체,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고. 인문학자로서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전 국민이 철학 같은 인문학을 배우고 민주주의라는 사회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 봐서 사회학도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결국 전국민이 인문학을 필수로 배워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든 인간을 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로 성장시킬 수 있고, 사회를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완전한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이룩되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행복을 꿈 꿀 수 있고 나의, 우리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말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못한 우리 사회를 보라! 음모와 분열과 혐오로 가득 찬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이전 28화♣ ‘함께’라고 하기에 너무 미안한 인생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