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몸은 생각보다 먼저 안다

10. 참으세요. 버텨보세요. 어쩔 수 없어요.

by 붱맛스튜디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약이든 수술이든, 반드시 부작용이라는 이름의 청구서를 내민다. 가슴에 남은 흉터 정도는 차라리 귀여운 훈장이었다. 진짜 불청객은 두 번째 재건 수술 전후로 몰려왔다.


그 무렵의 내 몸은 한 군데만 고장 난 집이 아니라, 방마다 경고등이 켜지는 낡은 건물 같았다.

확장기에 식염수를 넣는 뻐근한 통증에 익숙해질 무렵, 수술 부위에 살짝 염증이 생겼다. 고름을 닦아내니 아주 미세한 구멍이 뽕. 수선집처럼 한땀 꼬맸다.

수술 후 복용 중인 호르몬 항암제 '타목시펜'의 부작용 중 하나는 자궁내막증이다. 정기적으로 자궁 검사를 받아야 했다. 부인과에서 의심 소견이 있다며 갸우뚱하던 의사가 원추절제술이라는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간단하다던 시술은 손톱깎기로 살점을 뜯어내는 고통이었다.

결과는 자궁경부암 0기.

잠깐 멍해졌다. 유방암도 모자라 이번에는 자궁이라고? 어디까지가 끝이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진심을 담은 표정으로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절망을 너무 쉽게 정리해버리는 문장처럼 들렸다.

그리고 몇 달 뒤, 유방 재건 수술. 가슴에서 확장기를 빼고 실리콘을 넣는 날이었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입원실. 눈을 뜨자마자 달려온 엄마에게 내가 처음 한 말은 "탕수육…"이었다. 사람이 덜 깨면 본심이 튀어나온다더니, 내 무의식은 중국집부터 찾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거울을 보고 기겁했다. 이마와 얼굴 곳곳에 시뻘건 발진이 올라와 있었다. 성형외과 의사가 말했다.

"아이고, 스트레스가 심했나 보네."

단지 스트레스로? 이렇게 된다고??

비극은 얼굴에서 멈추지 않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까끌거리는 통증에 안과를 찾으니 안구 알레르기까지 왔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비동염까지. 한 달 내내 항생제를 들이부으며 콧속에서 진동하는 큼큼한 냄새를 견뎠다. 몸속 어딘가가 조용히 썩고 있는 기분은 생각보다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제 수술은 그만해도 되겠지. 내 몸은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밤중에 눈을 떠 보니 내가 목을 벅벅 긁고 있었다. 손등도 간지럽고, 눈도 뜨기 힘들었다. 얼굴 전체에 불긋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게 뭐야.

마치 <기생충> 에서 숨어있던 가족을 발견한 듯, 집주인만 놀라고 내 몸속 두드러기는 태연했다. 잘 숨어있다 들켰다는 듯 뻔뻔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두드러기는 생각보다 폭력적이었다. 가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잠을 깨우고,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안 그래도 한계치인 신경을 끝까지 긁어댔다. 머리에 지퍼가 달려 있었다면 열자마자 폭탄 하나가 툭 튀어나왔을 것이다.

어느 날은 가슴 안쪽이 미친 듯이 가려워 응급실에 갔다. 1분에 한 번. 포로록 간지럽히고 사라지는 악마들 같았다. 헉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눈물도 안 났다. 사람은 너무 아프면 오히려 리액션이 단출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체질 검사에 알레르기 검사까지 했다. 우유, 토마토, 계란, 땅콩. 먹는 음식 거의 전체에서 반응이 나왔다. 한 한의사는 현대병이라며 너무 잘 먹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억울했다.

남들만큼 먹었을 뿐인데. 왜 나에게만? 왜!!

의사들은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다들 암묵적으로 짐작하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아까 말한 항암제 타목시펜의 부작용 중 하나로 홍조, 발진이 10%이상이었으니까. 십수명의 의사들에게 나는 공식적으로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브리핑을 듣는 기분이었다.

대학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말했다.

"원인은 알 수 없어요. 항히스타민제 드세요."

항암제 때문이 아니냐고 묻자 돌아온 건 비수 같은 반문이었다.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다고 그 약을 끊으실 건가요?"

'일 수도 있다.'
나는 거기에 꽂혔다. 그래, 일 수도 있는 거잖아.

마지막 희망처럼 찾은 암센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고 미혼인데 얼마나 속상해요"라는 의례적인 위로 다음에 피부과 협진이 이어졌다. 피부과도 별수 없었다.

"약을 바꾼다 해도 알레르기가 날 수 있으니 바꾸는 건 의미가 없어요."

그 순간 머릿속 뉴런 하나가 탁,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디스코팡팡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다가 결국 팔에 힘을 빼버리는 것처럼. 탁.

암센터,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알레르기내과, 가정의학과, 한의원까지. 다들 휴가 내고 유럽 가고 동남아 가는 사이, 나는 소중한 연차를 병원 가는 데 다 썼다. 친구들이든 누구든 만날 수 없었다. 언제 이 불청객이 찾아올 지 모르니까.

병원을 떠돌며 내가 얻은 결론은 단 하나였다.

약 부작용은 해결하는 게 아니라,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익숙한 문장인가.

참으세요. 버텨보세요. 어쩔 수 없어요.

아주 오래 들어온 말들이 몸의 문제 앞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이번엔 인간관계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 그 말을 한다는 것뿐이었다. 하나를 고치기 위해 다른 데가 망가지는 풍선효과 앞에서, 환자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

내가 간간히 평온한 상태에 이른 건 이름도 효능도 잘 모르는 항히스타민제를 털어 넣고 나서였다. 내 몸의 평화가 약통 안에서만 허락되는 기분은 꽤 비참했다.

몸의 알레르기는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흙바닥 같다. 언제 찾아올 지 모르지만 적어도 대비는 할 수 있다.

나아지는 건지, 익숙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안다.

언제나 참을성이 높다고, 병원에서 늘 칭찬받는 환자였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성실하고 우직한 직원. 억울해도 웃고, 분해도 참고, 상처받아도 멀쩡한 척했다.

그리고 결국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것들이, 가장 약해진 틈을 타 피부 위로 기어올랐다.

참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입으로 지르지 못한 비명은, 내 몸이 대신 질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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