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신생아실의 미스터리 음악가〉
00:41 AM.
새벽 순찰을 돌던 서이나는 갑자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평소엔 모니터의 “삐—삑”만 울리는 병동에,
오늘은 피아노 선율이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어? 뭐지?
병동이 갑자기…
새벽 카페 됐는데?”
이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문틈으로 슬쩍 들여다봤다.
그리고 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평소 밤마다 단체 떼창을 자랑하던 신생아들이—
모두
잠.
잠.
잠.
아기 하나는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마치 ‘오늘 선곡 좋네’ 하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다른 아기는 음악 박자에 맞춰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한 아기는 젖꼭지를 물고 리듬 타듯
턱을 까딱까딱—
완벽한 새벽 콘서트 감상객들.
서이나는 속삭였다.
“… 아가들아, 너네 혹시…
클래식 감상단이니?
이건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스피커 앞.
천천히 돌아서는 한 사람.
“… 제. 하. 선. 생. 님?”
00:42 AM.
이나는 슬리퍼 소리도 잊고 스피커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선생님!!! 지금 음악 키셨죠!!!
새벽 한 시예요, 새벽!!!
아니 이거 거의…
병동 테라피 콘서트잖아요!”
제하는 평소처럼 조용하게 대답했다.
“아기들… 잘 자라고요.”
“아니… 그런 멘트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시면…
제가… 아니, 아기들이요!
아기 심박이 폭주한단 말이에요!”
제하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기들이요?”
“…네. 아기들.
저는 아니고. 전혀 아니고요.
아기들 심박이요. 네.”
이나가 다시,
"아니긴 한데 약간 맞긴 한데
아무튼 그게 아니라!!!
아기들 때문이에요!!!
애들 반응 미쳤다고요!!
방금 누가 춤췄어!!!”
이나는 괜히 손을 흔들며 말을 정리하는 척했지만
얼굴은 이미 붉게 올라와 있었다.
제하는 살짝 웃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나는 그 미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 뭐야… 웃었어…
심장 조심 좀 하라고…’
아침 회의에서 지윤 선배가 물었다.
“어제 새벽에 음악 나오던데 누가 틀었어?”
서이나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윤제하 선생님이요…”
순간, 병동 전체의 시선이 이나에게 쏠렸다.
신입 간호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와… 새벽 감성…
저 그거 좋아하는데요…?”
이나는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아니!! 설레지 마세요!!
그거 설렘용 아니고요!
힐링용이에요!!!
100% 순수!! 진짜라고요!!!
아 몰라요 아무튼 오해 금지!!!”
하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그래 그래~’ 그것이었다.
“…아 진짜 왜 다 그 표정이에요…”
이나의 작은 항의는 손끝에만 맴돌았다.
그날 밤.
서이나의 순찰 속도는 전날보다 더 느렸다.
0.5배도 아니고, 거의 0.3배.
“아니에요. 관찰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냥…
예술 감상 시간이죠… 뭐…”
그렇게 걷는 동안
피아노가 다시 흘렀다.
‘됐다… 또다… 시작됐다…’
문을 열자,
어김없이 스피커 앞에 선 윤제하.
“선생님… 오늘도 키셨네요.”
“네. 오늘은 밝은 곡이에요.”
이나의 반응은 폭발 직전의 소다캔과 같았다.
“선생님 진짜!!!
제가 어제 심장 바쁘다고 했죠!?
오늘은 심장이 출근을 안 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기들이요!!! 아기 심박!!!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 보이시죠!?
지금 저기 오른쪽 애 입꼬리 올라갔어요!!
저거 음악의 힘이거든요!!!”
실제로 아가들은
작은 손을 오므리거나
가끔 다리를 ‘킥’하며
피아노와 은근히 합을 맞추고 있다.
던져놓은 이불도
리듬을 아는 듯 살짝씩 들썩였다.
병동 전체가 은근히 춤추고 있었다.
병동의 기적은
언제나 조용히 도착했다.
피아노 한 곡.
아기들의 미세한 율동.
스르륵 잠드는 평온한 얼굴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차오르는 마음.
그 작은 순간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그게 바로 기적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생각보다
되게 잘생긴 방향에서 오기도 했다.
그 사실을 서이나만 모르고 있었다.
제하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도 잘 잤네요. 아가들.”
서이나는 생각도 안 하고 대답했다.
“… 저도요.”
0.3초 뒤, 그녀는 제자리에서 튀듯 반응했다.
“아— 잠깐!!! 방금 그거 취소!!!
저도 잤다는 말이 아니라—"
저 방금 뭐라고 했죠?!
아니, 아니, 울 아기들 때문에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새벽 음악은 꺼졌는데
이나의 심장은 여전히
자기만의 OST를 재생하고 있었다.
신생아실에 기적 같은 피아노 소동이 지나간 뒤,
서이나는 순찰마다
슬리퍼를 0.3배 속도로 끌고 다녀요.
그러던 어느 새벽—
아기들 모니터에 갑자기 이상한 수치가 뜨기 시작.
그리고 다음 순간—
스피커에서 또렷한 ‘띠링’ 소리가 났다.
누가 눌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과연?)
“병동의 작은 기적은
늘 예상 못한 곳에서 피어나요.”
진짜 간호사의 성장기,
EP.30. 〈새벽이 조용할 리가 없잖아요〉 에서
병동의 가장 따뜻한 ‘새벽의 비밀’을 만나보세요.
다음 주 목요일,
당신의 마음에 조용한 멜로디가 흐를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