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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

《웃는 남자》(1928)

by 이다연


《웃는 남자》

The Man Who Laughs, 1928
웃고 있지만 가장 깊이 울고 있는 얼굴

감독: 파울 레니 (Paul Leni)
원작: 빅토르 위고
국가: 미국
제작: 유니버설 픽처스
개봉: 1928년
형식: 무성영화 / 흑백
장르: 멜로드라마 / 비극 / 사회극
러닝타임: 약 110분


✦ 《웃는 남자》

웃음이 감정이 아니라
형벌이 되는 순간을 찍은 영화다.
그는 항상 웃고 있지만,
관객만이 그의 울음을 본다.


1. 줄거리 요약


어린 시절,

귀족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소년 ‘그윈플레인’은 잔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의 입은 칼로 찢겨
영원히 ‘웃는 얼굴’로 고정된다.


눈보라 속에 버려진 그는
우연히 *앞 못 보는 소녀 ‘데아’*를 발견하고,
함께 떠돌이 광대 ‘우르수스’에게 거두어진다.


세 사람은
“웃는 얼굴의 광대”와 “보지 못하는 눈”과 “구경꾼의 세계” 속에서 가족처럼 살아간다.

그윈플레인은 늘 웃고, 데아는 그의 얼굴이 어떤 형상인지 알지 못한 채 그의 영혼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워진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그는 본래 귀족이었으며, 정치적 음모 속에서 버려진 인간이었다.


신분이 밝혀진 순간, 그는 원치 않는 권력의 세계—귀족과 의회—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광대로 조롱당하고, 웃는 얼굴 때문에 다시 한번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다.


사랑도, 자유도, 선택도 허락되지 않는 세계.

그는 결국 깨닫는다.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진짜 얼굴은 데아 곁에 있을 때의 ‘보이지 않는 얼굴’뿐이라는 것을.


그는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웃고 있지만,
가장 슬픈 얼굴로.


2. 영화적 특징 — 왜 중요한가?


① 얼굴이 곧 운명이 되는 영화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레인의 얼굴은 표정이 아니라 형벌이다.

그는 슬퍼도 웃어야 하고,
사랑해도 웃어야 하며,
절망 앞에서도 웃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에서 웃음은 감정이 아닌 저주다.


관객은 끊임없이 묻는다.

“이 얼굴은 과연 그 자신의 얼굴인가,
아니면 사회가 강요한 가면인가.”


② 보지 못하는 눈과, 감춰진 얼굴의 역설


데아는 앞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만이 유일하게
그윈플레인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본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숨결, 말투, 침묵, 손의 떨림을 사랑한다.

이 아이러니는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세상은 그의 얼굴만 보고,
한 사람만이 그의 영혼을 본다.


③ 광대와 귀족 — 같은 공간, 다른 인간성


광대의 무대는 조롱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연대와 사랑이 있다.

반면, 귀족의 의회는 권력의 공간이지만
그곳에는 웃음도, 연민도 없다.


드레이어가 《오데트》에서
“종교 권력 vs 한 개인의 신념”을 대비했다면,

《웃는 남자》는

“사회 권력 vs 한 인간의 얼굴”을 대비한다.


④ 흑백 명암 — 웃음과 절망의 이중 구조


그의 하얗게 드러난 웃는 입과
검게 잠긴 눈동자.

밝은 조명 아래에서 더 선명해지는
비극의 형상.

이 영화의 흑백 대비는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라
‘겉의 웃음’과 ‘안의 절망’을 동시에 새긴 조명 기술이다.


3. 문화적·영화적 의의


① “얼굴이 사회적 낙인이 되는 최초의 비극”


《웃는 남자》는
얼굴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하는 기호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얼굴은
정체성도, 감정도, 선택도 대신 결정당한다.


② 팝컬처의 원형 — 조커의 탄생


배트맨의 조커,
광대형 악역,
웃음 뒤에 숨은 파괴성의 아이콘은

대부분 이 영화의 그윈플레인에게서 파생된다.

하지만 원형은 다르다.

그윈플레인은 악인이 아니라,
웃음을 강요당한 가장 순한 인간이다.


③ 여성과 사랑의 윤리


데아는 대상화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각이 아닌 감각으로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사랑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조건이 없는 감정이다.


4. 감상평 및 분석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다.
그러나 감정의 구조는 잔혹할 만큼 정확하다.

웃는 얼굴 → 조롱
조롱 → 고립
고립 → 권력
권력 → 더 깊은 고독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깨닫는다.

웃고 있는 얼굴이
반드시 행복하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
그의 마지막 선택은 영웅적이지 않다.
그저 사람이 되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5. 배우: 콘래드 베이트 (Conrad Veidt)


그윈플레인을 연기한 콘래드 베이트는
당대 최고의 표정 연기자로 평가받는다.

입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의 눈과 턱, 목, 숨결이 감정을 연기한다.


팔코네티가 《오데트》에서
“신념을 눈물로 연기했다면,”

베이트는 《웃는 남자》에서
“고통을 웃음으로 연기한다.”


6. 몽타주적 관점에서 본 《웃는 남자》


웃는 얼굴 → 귀족의 비웃음 → 다시 웃는 얼굴
→ 조롱의 무한 루프



데아의 손 → 그윈플레인의 얼굴 → 눈물
→ 감각이 얼굴을 구원하는 구조


몽타주는 이 영화에서,
웃음을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만든다.


7. 결론


《웃는 남자》는

웃음이 가장 잔인한 가면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영화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얼굴로 살고 있는가?”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얼굴을 되찾기 위해,
모든 세계를 버리는 이야기다.


감독 탐구


파울 레니 (Paul Leni)


1895 – 1929
독일 표현주의의 어둠을 할리우드로 옮긴 가장 짧고 강렬한 감독

본명: 파울 요제프 레비(Paul Josef Levi)

출생: 독일 슈투트가르트

사망: 미국 로스앤젤레스 (단 33세 요절)


활동 분야:
무대미술 → 무성영화 연출 → 고딕·심리 스릴러


1) 파울 레니는 어디에서 왔는가

— 영화보다 먼저 ‘무대의 사람’이었다

파울 레니는 원래 무대 디자이너(세트 디자이너)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 공연예술계에서


기하학적인 무대

왜곡된 공간

과장된 그림자

를 설계하는 표현주의 무대미술가로 활동했다.


→ 이 감각이 그대로 영화로 옮겨오며
“공간이 심리를 표현하는 연출”이라는 확고한 미학이 만들어진다.


2)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핵심 인물


레니는 1920년대 초 독일에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을 연출한다.

《Waxworks (1924)》
→ 연속적인 공포 에피소드 형식
→ 인물보다 분위기·공간·그림자가 주인공인 영화


이 시기의 레니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노스페라투》


와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미학 계보 안에 정확히 위치한다.


3) 할리우드 진출

— 독일의 어둠이 미국으로 건너간 순간


1926년, 파울 레니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초청을 받아 할리우드로 이주한다.

당시 유니버설은


괴물 영화

고딕 호러

기괴한 멜로드라마


를 브랜드처럼 만들고 있었고,
레니는 여기에 독일식 심리 공포 미학을 그대로 주입한다.


4) 대표작 정리


✅ 《고양이와 카나리아》


The Cat and the Canary (1927)
→ 유니버설 고딕 호러의 출발점
→ 음산한 저택, 유령 같은 인물, 그림자 연출

이 영화는 이후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의 분위기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형이 된다.


✅ 《웃는 남자》


The Man Who Laughs (1928)
→ 파울 레니 미학의 절정
→ 멜로드라마 + 표현주의 + 사회비극의 결합


이 작품에서 레니는,

얼굴을 사회적 형벌의 상징

공간을 권력의 구조

조명을 감정의 증폭기

로 사용한다.


5) 파울 레니의 영화 미학 핵심 요약


파울 레니의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불안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그의 세트는 언제나 왜곡되어 있고, 안정적인 직선보다 흔들리는 곡선과 기울어진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인물의 심리 상태가 곧 공간의 형태로 드러난다.


조명 또한 사실적인 빛이 아니라, 강한 명암 대비와 그림자 중심의 조형적 빛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밝음은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을 선명히 드러내고, 어둠은 공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고독이 머무는 자리다.


레니의 인물들은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생부터 괴물이기보다, 사회 속에서 밀려나며 점점 ‘괴물로 보이게 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흐르는 감정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공포와 연민, 그리고 깊은 고독이 동시에 겹쳐진 감정의 층위다.


결국 파울 레니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하나로 수렴된다.

“괴물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는 존재다.”
레니는 공포를 통해 인간을 낙인찍는 사회의 시선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가장 연약한 인간의 얼굴을 조용히 비춘다.


레니의 인물들은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갖는다.


태생적으로 약자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

웃음, 광기, 기형, 고독을 동시에 지님


→ 괴물은 내부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다는 시선


6) 조커의 실질적 창조자


콘래드 베이트가 연기한 그윈플레인의 얼굴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커

광대형 빌런

웃는 악마 캐릭터

의 시각적 원형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레니가 만든 그 ‘웃음’은

광기의 웃음이 아니라
고통이 굳어버린 표정이다.


이 점에서 파울 레니는
공포 캐릭터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꾼 최초의 감독이라 평가받는다.


7) 너무 짧았던 생, 그리고 영화사의 만약


1929년,
《웃는 남자》 개봉 직후 파울 레니는 패혈증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향년 33세.


만약 그가 1930년대까지 생존했다면,

유성 괴물 영화의 핵심 연출자

히치콕과 나란히 기억될 심리 장르 거장


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영화사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유니버설 호러의 문을 연 사람,
그러나 그 문 안으로 들어갈 시간은 없었던 감독.”


8)《오데트 – 웃는 남자 – 레니》

삼각 연결 구조


드레이어 → 신념의 얼굴

레니 → 형벌의 얼굴

베이트 → 웃고 우는 얼굴의 배우


이 세 축이
1920년대 ‘얼굴 영화의 극점’을 완성한다.

파울 레니는
웃음을 가장 잔인한 비극으로 만든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서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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