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프레임으로 지나온 1920년대
1920년대 영화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어떤 시대의 언어보다 시끄러웠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폐허 위에 서 있었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남은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무너진 인간의 신뢰, 붕괴된 가치, 그리고 다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영화는 바로 그 균열 위에서 태어났다.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에서 우리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배고픔을 숨기기 위한 몸짓이었다.
산업화의 속도에 밀려난 노동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의 환상 속에서 길을 잃은 개인—
채플린의 트램프는 1920년대의 철학자였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더 노골적이었다.
기계 위에 세워진 유토피아,
그 아래에서 인간은 숫자가 되었고,
감정은 관리 대상이 되었다.
이 영화는 SF가 아니라 예언이었고,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에 던진 최초의 경고였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노스페라투〉—
이 기괴한 그림자와 뒤틀린 공간들은 단순한 미학이 아니었다.
전쟁 패배 이후의 독일 사회가 겪은 집단적 트라우마,
권위에 대한 불신, 광기에 대한 공포가
스크린 위에서 시각적 언어로 폭발한 결과였다.
왜 인물들은 왜곡된 골목을 걷고,
왜 그림자는 현실보다 크게 드리워졌는가.
그것이 바로 시대의 정신(Zeitgeist)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할리우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슬랩스틱과 멜로드라마, 스타 시스템.
현실을 직면하기보다,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메리 픽포드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얼굴은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안전한 신화였다.
이 모든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다.
“세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1920년대는 영화가
‘기술’에서 ‘언어’로 변모한 결정적 시기였다.
편집은 사고가 되었고,
미장센은 감정이 되었으며,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 장치가 아니라
세계관을 설계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영화가 아직 말을 배우기 직전이었기에
오히려 더 솔직했다.
침묵 속에서
인간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사회는 숨기지 못했다.
〈The Gold Rush〉(1925, 찰리 채플린)
〈Safety Last!〉(1923, 해럴드 로이드)
대공황 이전이지만 이미 빈곤과 불안은 시작되었고,
슬랩스틱은 현실을 부정하기보다 잠시 미뤄두는 웃음이었다.
포스터 속 인물들은 늘 낙천적인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 몸짓은 위태롭다.
→ 불안한 시대가 허락한 가장 안전한 웃음.
〈Way Down East〉(1920, D. W. 그리피스)
〈Stella Maris〉(1918, 메리 픽포드)
메리 픽포드는
‘미국의 연인(America’s Sweetheart)’이라는 국가적 감정 장치였다.
순수함, 희생, 눈물, 구원—
이 멜로드라마들은
혼란한 사회 속에서 도덕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이야기였다.
〈Robin Hood〉(1922,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The Thief of Bagdad〉(1924)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포스터는
이야기보다 몸, 서사보다 영웅성을 강조한다.
정의롭고, 용감하며, 실패하지 않는 남성—
그는 현실의 불안을 대신 짊어지는
이상화된 신체였다.
메리 픽포드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얼굴은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안전한 신화였다.
현실을 고발한 독일 표현주의와 달리
할리우드는 위험을 관리하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포스터는 영화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 “이 영화는 당신을 불안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포스터들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1920년대 미국 사회의 심리 지도다.
곧 영화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가능성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책임이기도 했다.
1930년대는
대공황이라는 현실,
전체주의의 부상,
검열과 선전의 시대 속에서
영화가 ‘말하는 존재’로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시험받게 되는 시기다.
웃음은 여전히 필요했고,
환상은 더 정교해졌지만,
이제 영화는
말로도 진실을 감출 수 있는 위험한 매체가 된다.
그래서 1930년대 영화는
1920년대보다 더 화려하지만,
어쩌면 더 위태롭다.
이제 24 프레임은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침묵의 시대가 남긴 그림자를 품은 채,
말하기 시작한 영화의 첫 장으로.
영화는 언제나 시대보다 조금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도착합니다.
사람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불안과 욕망, 정치와 경제, 기술과 윤리의 균열은 늘 먼저 스크린 위에 흔적으로 남습니다.
FOMO 24 프레임은
‘놓치고 싶지 않다(Fear Of Missing Out)’는 감정에서 출발한 고전 영화 기록 프로젝트입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에, 의도적으로 가장 느린 속도인 24 프레임으로 영화를 다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1920년대 고전 영화 28편을 통해 무성영화라는 형식 안에 담긴 전쟁 이후의 세계, 산업화의 속도, 불안정한 민주주의, 자본과 노동, 그리고 인간이 느꼈던 근원적인 고독과 희망을 영화사적 흐름과 함께 짚어봅니다.
찰리 채플린의 웃음은 왜 그토록 쓸쓸했는지, 독일 표현주의의 그림자는 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는지,〈메트로폴리스〉의 미래는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이 질문들은 과거를 향해 던진 것이 아니라 지금을 이해하기 위해 남겨둔 질문들이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 해설서이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시대를 읽고, 시대를 통해 인간을 다시 바라보는 하나의 기록이자 사유의 노트에 가깝습니다.
1920년대의 영화들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은 놀라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영화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브런치북에서는 1930년대 고전 영화와 함께 ‘말하는 영화’가 감당해야 했던 표현의 책임과 검열, 선전과 예술의 경계로 발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기록했고,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 씁니다.
침묵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침묵이 남긴 질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24 프레임은 다음 계절로 넘어갑니다. 말하기 시작한 영화의 첫 장으로.
FOMO 24 프레임– 이다연 – 1930s
다시,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