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어 외치던 그 여름
2002년.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던 그 해 여름,
나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선교사셨고, 나는 그곳에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빠듯하고 분주한 한국보다,
조금 느리고 여유로운 우즈벡의 리듬이
어린 나에게는 훨씬 잘 맞았다.
그 시절의 인터넷은 지금처럼 빠르거나 안정적이지 않았다.
통신 방식이라 전화가 오면 끊기던 시절.
그래도 우리는 함께했다.
우즈벡에서 살아가던 한국 가정들이
그때만큼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
4–5 가정이 가장 거실이 넓었던 우리 집으로 모였고
어쩔 땐 다른 집에 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가장 또렷한 장면은
사람들로 가득 찼던 그날의 거실,
그리고 숨을 죽이며 경기를 바라보던 그 공기의 온도다.
누구나 빨간 티셔츠를 입고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동네 한인들이 모이는 곳마다 열기가 넘쳤고
심지어 우즈벡 친구들까지 함께 응원하며 축하해 주었다.
낯선 땅이지만, 그 여름만큼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하나’라는 감정이 선명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감동은 결코 흐려지지 않았다.
그 시절, 모두가 갖고 싶어 했던 공이 있었다.
2002 월드컵 공식 축구공, 피버노바.
정품이든 짝퉁이든 상관없었다.
그 디자인, 그 이름만으로도
마치 우리가 월드컵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나도 그 공을 들고
골목에서 공이 닳고 찢어질 때까지 뛰어다녔다.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찼고,
때로는 나도 그라운드 위의 선수가 된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공 하나로도 충분했던 시간,
그 여름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달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처럼 온몸이 하나로 타오르던 기억이 또 있었나 싶다.
무언가에 이렇게 열광하고, 기뻐하고, 함께였던 순간이
다시 오긴 했을까?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여름의 공기와 목소리는
아직도 마음 한편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 다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함께였던 그 시절의 열정일지도 모른다.
2002년의 우리는
멀리서도 마음은 가까웠고,
그 여름, 우리는 함께 외쳤다.
그때의 열정, 그때의 환호성—
다시 꺼내보면 괜히 뭉클해진다.
그건 단순한 월드컵이 아니라,
함께였기에 더 특별했던
우리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