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설문을 봤다.
“지금 85억 원이 생긴다면 회사를 계속 다니겠는가?”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적당히 여행 다니고, 하고 싶던 걸 하며 살아보겠다는 이야기들.
적어도 내 주변에서라면 그게 대체적인 정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다니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솔직히, 좀 의외였다.
한 댓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유재석, 지드래곤, 이병헌, 김은숙 작가 같은 사람들이 언급되었다.
이미 충분한 부를 가졌음에도
자신의 재능과 영향력을 발휘하며
명성과 자아실현까지 이루는 모습이
참 부럽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에 비해 너무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라며 덧붙였다.
일은 그저 시간을 써서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고,
아마 85억이 아니라 15억만 있어도
회사에 다닐지 말지 고민했을 거라고.
댓글은 이렇게 끝났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나는 아마 로또를 살 것이다.”
스쳐 지나갔지만, 묘하게 마음 안쪽에 무언가 걸렸다.
나도 언젠가는 회사를 다닐 줄 알았고,
실제로 5년 넘게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았다.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 길을 준비해온 건 아니었다.
그저 물처럼 흘러가다 우연히 마주친 기회였고,
중대한 결정들이 내 선택이었기도 했지만
상황이 나를 그리로 데려간 부분도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경제적으로 조금 안정되자
일에 대한 감정도 달라졌다.
애정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이 덜 낯설어졌고,
조금은 ‘내 옷’처럼 느껴졌다.
그 일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정으로 일하게 됐다, 정도랄까.
가끔 원할 때 훌쩍 여행을 떠나고,
가맹 상담이 들어와도 실적을 위한 일방적 영업이 아니라
내 기준에 맞는 가이드를 직접 세우고,
할 일을 스스로 정할 수 있을 때,
처음으로 내가 이 일의 주인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한 번은 그런 상담 자리에서,
상대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서 해볼게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내가 정한 기준이 누군가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는 사실이
작지만 묘하게 뿌듯하게 남았다.
그제야 책임감도 생기고,
일이라는 것이 조금은 나와 가까워졌다.
그래서 그 댓글을 쓴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도 처음부터 자아실현을 위해 일한 건 아니었을지 모른다.
일을 하다 보니
그 일이 자기 삶과 맞아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그들의 성공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번 것’이라기보다,
지속과 선택, 환경과 운, 구조가 맞물려
그렇게 보이게 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조직 안에서
유연하게 사고하고 새로운 선택을 감행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공무원이나 군인처럼
시스템이 고정된 구조에선 더 그렇다.
시간은 흐르지만 풍경은 바뀌지 않고,
사람도, 일도, 리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 안에 있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흐릿해지고, 역할만 선명해진다.
그 안에서 자기를 잃지 않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기질도 다르고,
감당할 수 있는 무게도 다르다.
어떤 이는 시스템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어떤 이는 변화를 견디며 자유를 얻는다.
모두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조건 안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다.
그래서 가능한 한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해보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객관화는
갑자기 생기는 통찰이 아니라,
삶 속에서 부딪히고 실수하면서
한 겹씩 몸에 밴 통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어디에 있든,
오늘보다 조금 나은 내일을 향해 살아가겠다는 태도는
자아실현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85억보다 더 귀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