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쉐이크는 그저 운동 후 채우는 영양소일 뿐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맛(나는 특히 무맛을 선호한다), 같은 타이밍에 마시는 이 습관은
단지 몸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삶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작지만 명확한 선언이다.
더 빠르고 달콤한 길이 늘 눈앞에 있다.
도너츠, 짜장면, 초콜릿, 맥주, 무심한 하루, 말 한 마디.
그 유혹들 앞에서
나는 매번 단백질 쉐이크를 고른다.
나는 믿는다.
단백질 쉐이크도, 하나의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매일 식단을 짜고, 거울 앞에 선다.
같은 도시락을 먹고, 무게를 기록하고, 단숨에 쉐이크를 삼킨다.
고통은 반복된다.
그 반복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오늘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초가공식품이 마약처럼 뇌를 자극해 다시 찾게 만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물질이라는 연구였다.
쿠키, 감자칩, 탄산음료.
그것들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의존을 유도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부정적인 결과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구조.
마치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뇌는 같은 회로를 따라 반응한다고 했다.
그 기사를 읽고 나니,
편의점 유리문 너머 줄지어 선 과자들이
예전보다 다르게 보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들어와 있어서
문제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는 초가공식품보다 더 은밀한 유혹들이 널려 있다.
한 마디 말, 한 번의 클릭, 짧은 외도, 손쉬운 정리, 너무 빠른 포기 같은 것들이다.
삶은 매일 나를 시험한다.
나는 그 시험지 앞에 앉아,
하루하루 나를 훈련시킨다.
절제는 고통스럽지만, 고통 없는 훈련은 없다.
그 훈련은 인간관계, 비즈니스, 감정까지 바꿔 놓았다.
나는 점점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있다.
배는 고프다.
그 배고픔은
내가 아직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신호다.
견디는 고통이 아니다.
바라보는 방향에 가깝다.
나는 단백질 쉐이크를 들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단순한 칼로리가 아니다.
선택의 흔적이다.
밤늦게 냉장고 문을 연다.
차가운 병에 손끝이 닿는다.
나는 문을 닫는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선다.
은은한 조명 아래 어깨와 등의 선이 또렷하다.
거기엔 설탕도, 기름도 없다.
그건 내가 만든 결과다.
오늘도 나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