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맞닿는 때가 오기를

by 노경문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대학 시절 윤시중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 중, 이런 말을 하셨던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진짜는 꾸미지 않아도 세련되고, 가짜는 꾸며도 어딘가 촌스럽다."

그대로였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내 나름의 방식대로 오래 품어왔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기준선 중 하나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처음엔 잘 몰랐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왜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에도 믿음이 가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려한 언변을 써도 끝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 차이는 포장이 아니라 감도의 차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다.

마치 종이의 결을 손끝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느껴지는 미세한 거슬림 같다.
부드러워 보이지만, 만져보면 어딘가 걸린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도 그렇다. 보기엔 그럴듯한데, 어딘가 사뭇 다른 감각이 남는다.

한때는, 잘된 가맹점의 매출을 내세워 창업 희망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영업 방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매출은 그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숫자였지만, 눈으로 확인되는 성과는 설득력을 가졌다.

그 방식을 택했다면, 지금쯤 가맹점 수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쉽고, 빠르다.

하지만 보람이 빠진 자리에 스트레스만 남았을 것이다.
사람을 모으는 건 쉬워도,
속이지 않으면서 오래 가는 건 어렵다.

자영업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생활 ○○’, ‘생생 ○○’ 같은 방송 출연 제안부터 연예인 홍보, 그리고 ‘올해의 대상’ 같은 허울뿐인 상까지. 그 뒤에는 항상 찬조금 300, 500이 따라붙는다.

유명해지고 싶다면, 멋있어 보이고 싶다면 선택은 간단하다.
돈을 내고, 편집된 진실 위에 올라서면 된다.

빨리 뜨면, 빨리 지기도 한다.

멋있어 보이기 위해 꾸밈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아름다움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만약 두 가지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내면을 선택하기로 했다.
살아보니까 그게 내 행복과 만족에 더 직접적으로 닿아 있더라.
남의 평가로 자아를 증명하려는 삶은, 결국 허기지고 끝내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내려놓고 오히려 가볍고 담백한 감정이 남았다.
꾸밈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평온이었다.

그렇다고 늘 정직한 흐름만 만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알고도 외면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상가주인들이 공실을 직접 채우기 위해 창업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부분은 우리 사업과 결이 맞지 않고, 창업 마인드 자체가 부족해 보여 거절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확신에 차서 무조건 자신 있다고 밀어붙인다.

그럴 땐 말려도 소용이 없다.
결국 창업을 도와주게 되고, 어김없이 망한다.

결이 다르면, 버티는 척은 가능해도 오래 가지 못하더라.

요즘 나는 ‘팔릴 말’보다 ‘믿을 말’을 고르려 한다. 잘 보이기보다, 덜 꾸며 말하려 애쓴다.
느리고 손해처럼 보여도,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덜 흔들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라고.
다 연출이고, 다 포장이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결이 맞닿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는 걸.
그걸 아는 사람은 안다는 걸.

진짜는 크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자랑하지 않아도 묻어난다.

그리고 안다.
결이 맞닿는 순간은 절대 우연만은 아니라는 걸.

누군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조용히, 흔들림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갈 때.
그 꾸준한 태도와 쌓인 시간들이 아름다운 결로 드러난다.

그 결을 마주하면 사람은 말보다 먼저 느낀다. 이 사람은 진짜라고.

빠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나는 결이 맞는 사람이고 싶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