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을 때 떠오른 삶의 지도

by 노경문

나는 인천 토박이, 강화 노씨다.
그래서 그 말이 한때는 과장처럼 들렸다.
강남에서 강남까지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말.
그렇게까지 복잡할까 싶었지만,
며칠 뒤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에 가맹점 미팅을 가는 길이었다.
두 시간 전에 출발했지만, 길을 두 번이나 잘못 들었다.
갈아타는 길마다 몇십 분씩 더 돌아야 했고,
교차로는 미로 같았고, 도로는 숨이 막혔다.

창밖엔 회색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정체된 차량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하면서 서울에 살고 싶어 할까?"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모여드는 이유는,
더 많은 기회, 더 높은 집값, 더 나은 미래 같은
추상적인 욕망 때문은 아닐까.

그 질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물음이 겹쳐졌다.
"성실한 사람이 회의감을 느끼고,
물질을 좇는 사람이 박수를 받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 불러야 할까?"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나누던 중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평생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왔어.
근데 요즘은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을 보며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
진심이 담긴, 잔잔한 고백이었다.

엄마는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셨고,
번쩍이는 것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자기 몫을 묵묵히 다해오셨다.
그런 엄마조차도
요즘 세상의 속도와 허상 앞에서는
잠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말이 막혔다.
엄마도 그러한데, 하물며 나는?

나 역시 돈에 끌려가고 싶진 않다.
그건 끝이 없고, 허망하고,
무엇보다 내 안의 무언가를 갉아먹는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돈이 없으면 관계조차 왜곡되는 구조다.
가치와 생존이 분리되지 않는 시대.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흔들리고 있다.

오늘, 서울의 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차를 돌리며 멈춰선 순간,
불현듯 엄마의 삶이 떠올랐다.
돈보다 사람을, 경쟁보다 성실을,
보이는 것보다 지켜야 할 것을 선택했던 삶.

엄마는 삶을 말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분의 하루는 조용히 반복됐고,
그 반복은 무기력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증명이었다.
어쩌면 철학이란,
책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형네 가족과 함께 다녀온 오키나와 여행은
그 철학이 감정으로 되살아난 시간이었다.
핸드폰은 덜 보고, 대화는 많았고,
천천히 걷고, 함께 밥을 먹고,
오랜만에 웃으며 쉬는 법을 배웠다.
그건 강제된 단절이 아니라,
되찾은 감정이었다.

요즘 우리는 쉬어야 할 때조차 ‘잘 쉬는 법’을 검색한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측정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몰입조차 생산성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오키나와의 시간은
그 흐름을 향한 소박한 불복종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물질이 기준이고, 비교가 일상인 시대다.
그 속에서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쉽고 느린 실천이다.

SNS를 줄이고,
물건보다 시간을 소비하고,
하루에 10분씩 감정을 돌아보고,
일부러 느리게 살아보고,
어른이 되어도 놀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

나는 지금도 확신하지 못한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지,
그리고 그 타협이 내 삶을 어디로 데려갈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떠올리는 삶의 지도는,
언제나 엄마였다.

올해 어버이날,
나는 꽃을 들고 엄마를 찾아갈 것이다.
그 꽃이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껏 얼마나 자주 길을 잃었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당신을 떠올렸다는 걸.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