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의 시대에 잊혀진 연결의 호르몬에 대하여
어느 날, 친구와 카페에 앉아 별것 아닌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날은 특별히 뭔가를 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성취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고, 그 감정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오래 남았다.
핸드폰도 자주 보지 않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순간 내 뇌에서는 도파민이 아닌 옥시토신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극은 없었지만, 관계가 있었고
속도는 느렸지만, 안정이 있었다.
반대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흥미로운 유튜브 영상만 골라서 보고
쇼핑몰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각종 알림과 게임을 번갈아 넘기며 시간을 보낸다.
그날은 분명 재미있었고, 중간중간 쾌감도 있었다.
그런데 잠들기 전,
마음이 공허했다.
뭔가 빠져있는 느낌, 채워지지 않은 감정이 남는다.
이 두 가지 경험은 너무도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은 도파민, 다른 한쪽은 옥시토신이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 채
자극적인 쪽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우리는 지금 도파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SNS의 알림, 짧고 강한 영상, 배달 음식, 퀵 배송.
이 모든 것이 우리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자꾸만 도파민을 터뜨릴 수 있는 자극을 찾아 나선다.
영상 하나 넘기기만 해도, 메시지 알림이 뜨기만 해도
우리 뇌는 ‘스파크’처럼 반응한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의 호르몬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도파민은 보상 예측과 추구를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모든 욕망의 중심에는 도파민이 있다.
"하고 싶다", "계속하고 싶다", "더 갖고 싶다"는 감정은 결국 뇌 속에서 도파민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렇기 때문에 도파민은 매우 강력하다.
그리고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단명하는 쾌락이다.
금세 꺼지고 나면 허전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자극을 찾아 헤맨다.
더 자극적이고, 더 빠르며, 더 강한 도파민을 향해서.
이쯤 되면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을 얻고 있는 걸까?
아니면 끊임없이 도파민의 소비자만 되어 가는 걸까?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도파민은 잘 아는데, 옥시토신은 잘 모른다.
‘도파민 중독’은 자주 말하지만, ‘옥시토신 결핍’이라는 표현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 호르몬’, ‘포옹 호르몬’으로 불린다.
누군가와 눈을 맞출 때, 따뜻한 대화를 나눌 때, 신뢰를 주고받을 때
조용히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도파민처럼 반짝이진 않지만,
관계와 유대의 본질에 깊게 스며든 존재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옥시토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
단지 낯설어서일까?
아니면 이 사회가 너무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원해서일까?
도파민은 즉각적이고 눈에 띄며, 비교적 측정도 쉽다.
그래서 다양한 실험, 콘텐츠, 영상에서 주로 다뤄진다.
반면 옥시토신은 천천히 쌓이고, 상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다.
개인의 뇌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태어나는 호르몬이다.
그러니까 도파민은 혼자서도 만들 수 있지만,
옥시토신은 ‘우리’가 있어야만 생겨난다.
그래서 지금처럼 개인화된 시대, 자극에 익숙한 사회에선
옥시토신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필요한 건 어쩌면 도파민이 아니다.
자극은 우리를 흥분시키지만, 안정시키진 않는다.
만족은 생기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그 모든 공허함을 채우는 것이 바로 옥시토신이다.
도파민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옥시토신은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도파민은 순간의 스파크처럼 화려하게 튀지만
금세 꺼진다.
옥시토신은 그 스파크가 지나간 자리를
천천히 데우는 불꽃의 온기처럼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 신뢰, 이해, 공감, 포옹.
그 모든 순간에 옥시토신이 있다.
오래가는 감정, 오래가는 관계, 오래가는 안정감.
이 모든 것은 도파민이 아닌 옥시토신이 만들어낸다.
우리가 자극에 길들수록 더 공허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연결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게 만드는 도파민보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게 만드는 옥시토신이
지금 이 시대에 더 필요한 이유다.
한 연구에서는 SNS 사용 시간이 길수록
도파민 민감도는 높아지지만
옥시토신 분비와 관련된 실질적 유대감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결과가 있었다.
많이 소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점점 더 관계가 피상적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들 중 진짜 오래 남는 것들은
눈부신 성과나 강한 자극보다
의외로 조용하고 따뜻한 장면들이다.
서툰 고백을 하던 날,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눈 말 한 마디,
친구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있었던 시간.
그런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감정으로 남아
삶을 지탱하는 어떤 중심이 된다.
도파민은 기록에 남을 사건을 만들지만
옥시토신은 기억에 남을 사람을 만든다.
우리는 그 둘 다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의식적으로
도파민을 줄이고 옥시토신을 늘려야 할 때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깊은 대화를 시도하고,
포옹을 하고, 기다려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의 뇌와 마음을 서서히 따뜻하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깊이다.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건 자극이 아니라 관계다.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힘은
도파민이 아니라 옥시토신이다.
도파민은 시작하게 만들고
옥시토신은 계속 머무르게 만든다.
옥시토신은 단순히 “사랑의 호르몬”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반이다.
신뢰, 공감, 정서적 안정, 공동체 감각 모두 이 한 가지 물질에서 출발한다.
하버드 의대 출신의 뇌과학자이자,
『The Molecule of More』의 공동 저자인
다니엘 Z. 리버먼 박사(Daniel Z. Lieberman)는 이렇게 말한다.
"도파민은 우리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반면 옥시토신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에 만족하게 만든다."
이 말은 뇌의 작동 원리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도파민은 항상 “더, 더, 더”를 외친다.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동시에 현재를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떠돌게 된다.
하지만 옥시토신은 지금 이 순간,
내가 곁에 두고 있는 사람,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충분하다고 느끼게 해준다.
이는 명확한 대비다.
하나는 갈망, 다른 하나는 충족이다.
하나는 추진력, 다른 하나는 안정감이다.
이 두 물질은 모두 중요하지만,
한쪽만 과도하게 강조되면 삶의 균형이 무너진다.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존 코이건 박사(John Cacioppo)도
옥시토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면역 체계가 아니다.
옥시토신 분비다.
우리는 물리적 단절보다 정서적 단절에 더 약하다."
이 인용은 아주 중요하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나 공허함을 느낄 때
음식을 폭식하거나 쇼핑, 영상 시청에 몰입하는 건 단순한 도파민 보충이 아니다.
그 속에는 결핍된 옥시토신을 도파민으로 억지로 채우려는 무의식적 시도가 있다.
하지만 도파민은 옥시토신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
정서적 고립을 즉각적 자극으로 메우려 해도,
그 감정은 곧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왜냐하면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은 인간 뇌의 가장 오래된 보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느리고 사적인 대화 속으로.
한 번 더 안아주는 포옹 속으로.
함께 걷는 산책과, 말 없는 침묵 속의 유대 속으로.
이런 모든 순간이
도파민이 아닌 옥시토신을 만들어낸다.
도파민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옥시토신이 나를 있게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파민이 필요하고,
그 길 위에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옥시토신이 필요하다.
도파민은 스파크다.
옥시토신은 불꽃의 온기다.
우리를 진짜로 따뜻하게 만드는 건
잠깐 튀는 불빛이 아니라,
그 뒤에 오래 남는 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