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매력이 가득했던 당일치기 익산여행
이미 끝났다던 장마는
기상캐스터의 예보를 무색하게 하려는 듯
그칠 줄 모르고 며칠 째 쏟아지고 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매일 아침이 신이 난다.
우중충한 회색빛 구름과
발을 푸욱 젖게 만드는 날씨가
마냥 좋을 수 만은 없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에는
마음을 씻겨내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뽀얗고 깨끗하게 씻겨진 나는
오늘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장화와 우산을 챙겨들고 떠난 오늘의 목적지는 익산.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밟게 된 익산터미널은
날씨 탓인지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고
주인이 보이지 않는 철물점이 즐비하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리바리 짐을 챙겨들고
벽돌과 철근 사이를 힘차게 걸어갔다.
날씨도 벽돌도
여행 중인 나, 양송키의 설렘을 막을 수는 없다!
첫번째 목적지는 < 금종제과 >
빵집은 괜히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달콤하고 폭신한 빵들 사이에서 마음도 따라 폭신해진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며 빵을 집어든다.
계란이 듬뿍 들어간 고로케를 좋아하겠지,
꽈배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 동생 것도 하나 집어든다.
나를 위해서는 달콤한 바나나 크림이 올려진 마들렌을 골랐다.
시원한 우유 한 잔 곁들여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무거운 어깨와 축축해진 양말 탓에
지친 몸을 풀어놓는다.
예쁜 빵집에서 멍을 때렸다.
그렇게 한참을 쉬다가 골목길 산책이나 하자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두 번째 목적지는 그 이름도 구수한 <서동시장>
시장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장구경 사람구경을 하며 걷는데
인적이 드문 회색빛의 이 도시가 낯설다.
괜히 온 걸까 싶기도 하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씨 탓에
뼈에 스미는 추위가 으슬거릴 법도 한데..
그래서인지,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은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체온을 함께 나눈다.
정갈하게 무치고 볶은 반찬가게의 반찬들과
빨간 불빛이 춤을 추는 정육점,
알록달록 이불가게,
호떡과 옥수수를 파는 포장마차..
구수하다.
시장을 구경하고 얼마 걷지 않아
담쟁이덩쿨이 멋스럽게 뒤덮인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르 물랑>
카페에 들어서자 손님이 꽤나 많다.
보이지 않던 젊은이들은 다들 여기 모인 듯
테이블이 몇 자리 남지 않을만큼 인기가 좋았다.
나는 원산지가 브라질인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한 쪽 테이블에 가 카페의 벽면을 채운 책들을 구경했다.
나만의 장소를 찾자고 이야기하는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저자가 프랑스유학을 하며 써낸 자서전같은 책이다.
프랑스 이름을 가진 카페에서
프랑스에 관한 책을 읽다니.
즐거움이 한층 더해졌다.
한참을 책장을 넘기며
저자의 프랑스를 접하고
나만의 프랑스를 상상하고 있던 찰나,
문을 열고 정말 프랑스인이 걸어들어왔다!
카운터의 사장님에게 익숙한 듯
프랑스어로 서로 대화하고
강아지를 예뻐해주고 우산을 건넸다.
두 분이서 서로 부부인 듯 했다.
프랑스 이름을 가진 카페에
프랑스 책에, 프랑스인 사장님이라니
테이블마다 놓여진 풍성한 생화 꽃다발까지
이 상황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준다.
익산에서 프랑스를 만나게 될 줄이야.
우연한 만남이 어찌나 즐겁던지!
카페의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맛있는 음식은 한 입도 남기기 아까운 것처럼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허겁지겁 읽어치웠다.
어딘가 추욱, 처진 것 같기도 하고
둥실, 떠다니는 듯한 어둑어둑한 이 공기의 분위기를
‘우울’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마주친 할머니들의 서로 기댄 어깨와
우연히 마주친 익산에서의 프랑스와
길 위에서 만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기쁨이
작지만 빛이 나는 보석같은 추억이 됐으므로.
세번째 목적지, < 토마레제면소 >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익산의 유명맛집으로 급부상한 식당이다.
벽면 하나를 통째로 창을 내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면을 수타치고 있고
깔끔하면서 따듯한 분위기가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낸다.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쳐낸 묵은지와 얼큰한 장국의 맛도 정말 훌륭했다.
테이블마다 달린 수전,
따듯한 느낌의 조명과
탁 트인 오픈형 주방,
식후 즐길 수 있는 미니카페까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진다.
심지어 면추가까지 무료라니
비내리는 허기진 밤에 기분까지 든든하게 해주는 멋진 식당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동통한 면을 하나 둘 건져먹다보니
배가 불러온다.
아, 이게 행복이지.
발걸음을 나란히 하고
좋은 맛을 함께 나누고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이 밤이 참 근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