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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 Oct 13. 2015

두 번째 게임 <삼국지4>

초등학생 시절, 다양한 게임 잡지사들의 난입으로 인해 출혈 경쟁이 일어났고 덕분에 적은 용돈으로도 재밌는 게임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잡지사들의 치킨 싸움으로 게임 업계가 축소된 결과를 낳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지. 덕분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  <삼국지 4>. 잡지의 번들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갔고 게임을 구동시켰다.


책과 만화영화로만 보았던 삼국지의 장수들을 직접 조종하며 중국 천하를 통일하는 그 게임. 나는 언제나 덕을 앞세우는 유비 진영을 선택하며 수 십 번의 천하통일을 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게임이다 보니 한계가 오기 시작했고 결국 고스란히 CD 케이스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생이 됐다.


누구에게나 중2는 있었다.

중학생은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른일 수 없는 존재였다. 특히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여기지만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 불쌍한 나이였다.


때문에 방 안에 틀어박혀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감수성 폭발하는 글들을 수첩 귀퉁이에 눅눅해질 정도로 적는 그런 나이였다.


그런 나에게 있어 특별한 친구가 있었는데 '개미'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였다. 까까머리에 까만 피부, 작은 키 그리고 동글동글한 안경. 그런 외모를 가진 친구를 보고 개미라는 별명을 짓지 않는 다면 그건 남자 중학생이 아니었다.


뭐 개미라는 친구가 나에게 특별한 영감을 줬거나, 목숨을 구해줬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개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위로는 누나가 3명이 있었다. 처음 개미의 집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바로 가족사진이 보였다. 거실 소파 위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에는 친구의 부모님과 가운데 앉아있는 개미가 있었고 3명의 누나들이 그 주위를 둘러 싸고 있었다. 


'누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개미는 곧바로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개미의 방에는 막내 누나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삼국지4>를 말이다. 막내 누나는 우리가 문을 연 것을 힐끗 보더니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줬다.


그건 나에게 있어서 조금 커다란 충격이었다.


나는 외아들이었다. 혼자 문을 열고 어두워진 방 불을 켜고 혼자 앉아있는 애완견에게 밥을 주는 그런 공간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누군가 반갑게 맞이하는 공간에 들어서자 낯설었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집안에 또래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개미의 누나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 우리에게 컴퓨터를 내주고 방을 벗어났다. 모니터에는 유비의 명령을 기다리는 평원성의 장수들이 대기 중이었다.


개미는 책장에 원피스 1권을 꺼내와 재밌는 만화라며 나에게 소개해줬지만 루피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샹크스가 상어에게 팔이 잘렸는데도 오직 밖에 있는 막내 누나가 신경 쓰일 뿐이었다.


그렇게 개미와 이야기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때 막내 누나가 문을 열고 "감자튀김 먹을래?"라는 말을 꺼냈다. 


감.자.튀.김


그것은 맥도널드 혹은 롯데리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지만 개미는 당연하다는 듯 "그래"라고 말했고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막내 누나는 커다란 접시에 두툼한 감자튀김을 한가득 올려놨다.


막 기름에서 꺼낸 듯 뜨거웠고 맛있었다. 여기에 막내 누나는 또 다른 기름을 내 가슴에 부어 버렸다.


"이따 이거 먹고 삼국지 같이 할래?"


지금봐도 설렌다.


3명이서 하는 삼국지는 특별했다. 모니터 한대에 의자 3개를 붙여 자신의 턴이 돌아왔을 때 마우스를 잡고 전략을 세웠다. 여러 명이서 같이 보다 보니 전략을 쓴다는 게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차례가 오지 않은 사람은 고개를 돌리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우리는 신군주를 만들고 공동의 적을 공격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꿨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삼국지를 여러 명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다음날 수십 장의 CD가 담긴 케이스에서 <삼국지4>를 다시 꺼냈다. 하지만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결국 삼국지는 다시 케이스에 들어갔고 나는 강아지에게 밥을 줬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개미의 집에 놀러 갔다.  그때마다 항상 개미의 막내 누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있을 경우 주방에서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와 두 살 터울이었던 막내 누나가 고등학생이 되고 우린 점점 초등학생티를 벗은 중학생이 되면서 함께 할 수 없었다.


2015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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