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쯤인가? 레진코믹스에서 귀여운 그림체를 가진 만화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광고하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눈망울의 주인공이 귀여워 보여 바로 보게 됐던 <단지>는 그 이후 나의 레진코믹스 첫 구매 목록이 돼버렸다.
본 사람도 있고 보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추억하는 일상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웹툰의 태동기 시절, <마린블루스>를 포함한 다양한 일상툰들이 쏟아졌고 이후 일상툰은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볼 수 있다는 매력적인 요소로 독자층들을 빠르게 확보해나갔다.
뭐 일부는 일상툰이 가지는 진부한 소재와 함께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일기를 봐야만 하느냐?라는 불편한 시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이것은 연예뉴스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의 일상툰의 경우 작가의 경험을 녹여낸 창작이기 때문에 밝고 명랑한 편이다. 때론 작가의 푸념이 들어가 있겠지만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단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목소리로 일기장 한 켠에 눌어붙은 묵은 감정들을 꺼내서 보여준다.
#비일상의 일상화
- 서른 하나, 독립한 지 10개월째, 생각해보니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가족을 겪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단지>의 정보 중-
개인적으로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몇 번의 다툼과 오해 감정싸움이 있어왔지만 이것 역시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을 정도의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단지>를 보면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가족 구성원들은 비일상적으로까지 보일 정도다. 아들만 예뻐하는 엄마,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리고 그와 닮은 첫째 오빠… 그들의 폭력, 폭언.
물론 남의 가족 이야기인 만큼 지금 글을 쓴 입장에서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작가의 일기를 빌려 말하자면 ‘오늘은 참을 수가 없어서 손목을 그었다’라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렇듯 보통의 일상툰이 가지고 있는 밝고 명랑한 이미지와는 달리 어두운 작가 가족의 개인사를 민낯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어투는 담담하기만 하다.
협탁에 마주 보고 앉아 전자레인지에 갓 돌린 몽쉘을 따뜻한 우유와 함께 마시며 자신의 비일상을 이야기하는듯한 작가(2화). 이러한 이유에서 일까? 보는 독자들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작가의 마음에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매력이 생긴다.
#그리고 위로
현재 20화까지 나와 있는 <단지>는 뜻하지 않게 포텐이 터지면서(작가의 말을 빌려) 휴재 상태다. 다양한 포털사이트에서 <단지>에 관련된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인터뷰도 나오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이 웹툰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여성이라고 차별받는 모습은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남존여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는 시각. 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가정 내 폭력을 보여준다는 시각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시각보다 중요한 것은 이 만화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도 만화에서 ‘위로받고…있어?’라는 말로 이 시대의 콩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위로는 영화 <조찬클럽>와 유사하다. 영화는 가정의 불화와 부모의 기대에 대한 중압감으로 모인 다섯 명의 문제아들이 모여 서로의 공통점을 알아가고 스스로를 치유해 간다.
상처받은 어른들에겐 <단지>가 있다. 과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어른들을 위한 조찬클럽은 <단지>이다.
#현재
지금의 <단지>는 휴재 중이다. 작가는 휴재 공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하고 싶다고 술회하고 있다. 여기에 위에서 말한 뜻하지 않은 포텐도 한몫했겠지.
여러 기사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단지>의 작가는 이렇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듯하다. 만화의 초중반을 보더라도 ‘악플’조차 없어서 관심을 구하는 모습이 있을 정도 였으니까.
그렇지만 현재의 주목받는 눈들이 작가 입장에서는 두려울 것이다. 여기에 작가 개인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 까지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단지> 작가와 같은 일들을 경험해 보지 못해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금 담담한 어조로 우리에게 '위로받고 있어?'라는 말을 남기길. 그리고 그녀 역시도 독자들의 눈들이 부담감이 아닌 위로와 공감의 눈길로 다가오길.
2015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