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함, 그리고 용기와 지혜
義(의)에 대하여
— 마땅함, 그리고 용기와 지혜
1. 한자 어원
義 = 羊(양) + 我(나)
→ ‘사사로운 나(我)’를 앞세우지 않고, ‘바름(羊)’을 따른다는 해석으로 발전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義, 己之威儀也。」
“의란, 자기의 바른 몸가짐이다.”
양(羊)은 고대 중국에서 길상·선함·바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義는 사사로움을 절제하고, 바름을 따르는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다.
• 인(仁)이 관계의 따뜻함이라면
• 의(義)는 그 관계를 지탱하는 바른 기준이다.
2. 동양철학에서 본 義
1) 공자 — “군자는 의를 으뜸으로”
* 《논어·이인(里仁)》
「君子義以為上。」
“군자는 의를 으뜸으로 여긴다.”
의는 사람됨의 중요한 기준이며,
사사로운 이익보다 더 근본적인 ‘바름’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2) 맹자 — 의는 ‘마땅함(宜)’
* 《맹자·진심 상》
「義,宜也。」
“의란, 마땅한 것이다.”
여기서 ‘마땅함(宜)’은
→ 개인 감정이나 취향이 아니라
→ 상황과 관계 속에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적절함이다.
또한 맹자는 네 마음(四端)중 하나인 수오지심을 의의 시작으로 보았다.
* 《맹자·공손추 상》
「羞惡之心,義之端也。」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의의 시작이다.”
즉, **악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의로움을 향한 감정적 기초가 된다.
3) 순자 — 의는 배우고 닦아가는 것
* 《순자·비상(非相)》
「仁義生於禮樂。」
“인과 의는 예와 음악에서 생긴다.”
순자에게 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 사회적 규범과 예(禮)를 통해 길러지는 덕목이다.
3. 서양 사상에서 대응되는 개념
동양의 義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은 없지만,
구조적으로 매우 가까운 개념들이 있다.
1) 아리스토텔레스 — “정의는 타인과의 관계 속 덕”
* Nicomachean EthicsV.1
“정의는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완전한 덕이다.”
→ 의와 마찬가지로,
바름은 ‘나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 “나만의 옳음”은 덕이 아니라 독단이다.
2) 칸트 — 보편화 가능한 원칙만이 도덕
*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너의 행위 원리가 보편 법칙이 되기를 원할 수 있을 때에만 행동하라.”
칸트는
“내가 옳다”는 주장만으로는 도덕이 되지 않고,
모두가 따라도 모순이 없는 원칙만이 옳음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 이는 맹자의 ‘마땅함(宜)’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4. 의(義)에 대한 나의 생각
의에 대해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마땅함의 어려움이었다.
의로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부딪히고 싶다는 마음보다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드는 게 솔직한 지금의 '나'이다.
그리고 피할 이유는 어디서든 쉽게 찾아내곤 한다.
또 어떤 때는
무엇이 정말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생명·도덕·윤리처럼 명확한 영역을 제외하면,
현실의 상황들은 늘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명확한 영역이더라도,
실제 상황에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판단이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의에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실제로 공자는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見義不爲,無勇也)”이라 했고,
맹자는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是非之心)’을 지혜의 단서로 보았다.
결국 의는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지혜로 분별하고, 용기로 실천하는 덕목임을 알게 된다.
이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이 마땅하게 돌아가도록 하려는 의지는
결국 나를 지키는 마음이기도 하다.
'의'에 대한 동서양 철학의 개념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의미는 아래 두 가지다.
• 맹자의 ‘마땅함(宜)’
• 칸트의 ‘보편화할 수 있는 원칙’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땅한가, 모두가 따라도 괜찮은가”라는 질문.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작은 부분에서부터 용기를 내봐야겠다.
오늘의 작은 마땅함이
내일의 더 큰 바름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