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마침표가 아니다. 쉼표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운동을 할 마음도 식단을 지킬 마음도 들지 않았다.
오르골 위의 작은 장식품이 계속 같은 곳을 돌듯이 의지와 감정의 불을 꺼트린 채로 회사와 집만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혹시 좀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도 끈이 떨어진 연처럼 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번아웃이 왔었다. 타이밍의 신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시기가 마침 생리 전이었어서 처음에는 그저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야 했는데. 난 아무리 피곤해도 하고 싶은 건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그런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생각이 난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부터.
번아웃이라고? 그럴 만한 일이 있었나? 문득 머리를 스쳤던 그 세 글자 단어에 숨 가쁘게 살아왔던 몇 달을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되돌아보았다.
그래, 돌아보니 치열한 봄이었다.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한 주제에 서둘러 움직였다.
다이어트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멀리했고, 나에게 이미 익숙한 만족감과 루틴을 순전히 이성으로만 고삐를 조이고 전부 뒤엎는 바람에 쉴 때도 가쁘게 숨을 쉬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욕심내는 미래를 위해서 안 그래도 부족한 쉬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쓴다.
마땅히 지칠 만했군. 지금 나에게 찾아온 번아웃이 너무나 당연하다 싶어 처음에 놀란 게 살짝 웃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그 일들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나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무리를 했다면 그것도 또 그렇기도 했지만,
그래서 지금 내 한계점을 알게 되었다.
내 하루의 한계.
내 체력의 한계.
내 의지의 한계.
내 감정의 한계.
그 선 앞에서 더 나아갈지 멈춰 설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번아웃이 온건, 그냥 온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후회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힘들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하얀 재만 남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그릇이 완전히 깨지기 전에 언제 넘치는지, 어떻게 금이 가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3개월 동안의 작은 성과가 남았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발을 떼기 전보다는 한 발자국 분명히 앞으로 와 있는 것이다.
나는 생각만 한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삶에 한 발, 지금의 난 그만큼은 가깝다.
다만 살아있는 몸인 이상 지치기도 하는 일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푸른 잎이 언젠가는 시드는 것처럼.
하지만 그 시든 자리에서 또다시 푸른 잎이 움튼다. 불행이 오는 것만큼이나 노력의 결과가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찾아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다가오는 불행조차 막지 못하는 그런 미약한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토록 공평한 세상이라면 노력할만하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로 넘어졌다면 그걸로 좌절하고 슬퍼할 시간이 없다.
넘어진 김에 넘어져야만 찾을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고 넘어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반드시 불행 뒤에는 행복이, 행복 다음에는 불행이 온다. 하지만 우리 눈도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아니면 불행만 찾거나, 행복이 아닌 것을 자기 맘대로 행복으로 위장시키기도 하니까.
의지와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는 김에, 가장 먼저 몸을 돌려 하늘을 보는 건 어떨까. 맑으면 그 햇빛의 온기가 피부에 닿는 것에 집중하거나 흐리다면 구름이 뒤엉키는 윤곽선을 눈으로 따르며 그 곡선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누운 김에 온몸에 힘을 풀고 크게 숨을 내쉰다. 눈을 감고 자연스레 깰 때까지 한숨 자도 좋겠다.
일어나는 건, 일어나고 싶을 때가 올 것이라 기다리면서.
넘어진 것조차도 잘못이 아니다. 많이 사용한 물건이 빨리 닳는 것처럼 내 몸과 정신도 그런 물건인 것을.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내 몸과 정신도 그 굴레 안에 있는 것을 난들 어쩌겠나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이 휴식은 필연이다. 필히 한 번은 만나야 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웃는 낯으로 인사하고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대접하고 그것과 싸우지 말고 배웅하며 헤어지자.
그러다 보면 다시 바람이 분다. 돛이 바람에 밀려나는 것처럼, 어쩔 수없이 넘어진 것처럼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다시 앞으로 달리게 될 것이다. 멈추지 않고 달릴 때보다 느리긴 하지만 지금 쉬었으니 쉬지 않고 달릴 때보다 결국에는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열심히 무리할 때에도,
모든 게 느슨한 때에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몸과는 달라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닳지 않을 것이니까.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나와 똑같은 번아웃 중의 당신이 생각하기로는 결론이 뭐 이렇게 쉽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로, 당신도 나처럼 힘을 빼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한 결과로 나는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될 수 있었다.
당신도 다시 당신의 일을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