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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Nov 09. 2021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22)

달리기 (by 윤상)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제일 처음 한 일은 개인톡으로 연락하는 거. 물론 이전에도 종종 개인톡 보내긴 했지만, 자주 쓰진 않았거든요. 거의 쭈가 포함된 단체톡을 주로 이용했으니까요. 일 때문에 맨날 만날수도 없고, 막 사귀기 시작했다고 저녁에 바로 찾아가기도 그렇고... 나름 부끄럽기도 했고, 아까 말한것 처럼 천천히 다가가는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뭐 그래봤자 단톡방에서 하던 얘기를 개인톡방으로 옮긴것 뿐이었지만요. 일어났어? 뭐해? 이런 대화가 아니라, 일하다 생긴 일이라거나 새로 나온 만화라거나 새로 나온 게임이라거나 이런 대화였지만요.


기다리던 주말이 되긴 했지만, 별 일은 없었어요. 일단 일요일은 만날수가 없었어요. 독실한 신자다 보니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야되서 아침에 김천으로 올라갔거든요. 이거야 뭐 상협이 만날때도 그랬으니 뭐 그려려니 했어요. 그리고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다짐했다보니, 일요일에 만난다는건 애당초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토요일에 만나려고 했는데, 또 토요일 저녁에 게임 길드원끼리 온라인 모임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뭐 어쩔 수 없이 커피 한잔 마시면서 잠깐 수다떨고 헤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다음주 토요일 저녁은 친구들 생일파티 모임, 그리고 그 다음주 토요일은 가족모임때문에 김천으로... 평일 저녁이라도 만났어야 되지만, 걔가 일하는 사립도서관이 화요일, 목요일은 밤 9시까지 야근을 해야했고, 그 영향인지 금요일은 걔가 완전 피곤에 찌들어 만날 상황이 아니더라구요. 한번 금요일 찾아갔는데, 눈이 반쯤 감겨가는거 보고 그냥 집에 들여보냈던 적도 있네요. 월요일과 수요일은... 소모임 정모라거나, 친구 만나거나, 뭐 어쨌든 바쁘더라구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평소와 크게 다른 것도 없었고, 그래도 잠깐이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만나는 것만 해도 충분했어요. 그리고 톡으로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한달 가까지 지났을 때, 나름 제대로 된 첫 데이트를 할 수 있었어요. 뭐 첫 데이트라고 해봤자, 예전에 등록했던 마라톤 대회 참가하는거? 사귀기 약 2주 전에 걔가 대구에서 마라톤 대회 열린다고 10킬로 구간 같이 뛸 사람 모집했거든요. 물론 쟤가 얘기하자마자 등록했고요. 다행인지 나랑 걔 말고는 아무도 등록 안했더라구요. 덕분에 약 한달동안 열심히 아침마다 동네를 달렸네요. 대회장에 도착하니 걔가 이미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더라구요. 이런 대회 처음인 나한테 걔가 등록은 어떻게 하고, 소지품은 어디 맡기고, 신발끝 체크랑 주의사항으로 물은 입만 축일 정도로 마셔라고 하는 등 이래저래 신경 써 주더라구요. 솔직히 말해 마라톤 준비보다는 그냥 기분이 붕떠서 얘기 반쯤은 귀에서 흘러내리더라구요. 대회 시작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모인 출발선에서 걔가 얘기하더라구요. 출발하면 일단 자기도 달리는데 집중하게 되니 선배 신경 못 써준다고 하더라구요. 나야 뭐, 그냥 신경쓰지말고 골인지점 통과하고 보자고 했죠. 그리고 출발을 하니 역시나 걔는 앞서나가더라구요. 나도 한달동안 나름 열심히 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멀어지는 걔를 따라잡긴 어려웠어요. 달리는 걔 뒷모습을 보며 나도 열심히 달렸지만, 걔는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죠. 뭐 그래도 코스가 정해져 있기에, 걔가 어디로 달리는지 아니까, 그 뒤를 열심히 달려나갔죠. 중간에 힘들면 걷기도 하고... 몇년을 걔 뒤를 따라갔는데, 10킬로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죠.


그렇게 한시간 좀 넘게 달려서 골인지점에 도착했어요. 역시나 걔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더라구요. 걔가 출발전에 준 주의사항. 절대로 도착하고 드러눕지 않기. 달린다고 힘빠진 종아리를 부여잡고 헉헉 거리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서 있었죠. 그리고 옆에서 몸을 풀고 있는 걔한테 말했어요. 너 계속 만나려면 체력 많이 키워놔야 겠다. 걔는 여기에 별 대답은 안하고 그냥 빙긋 웃었어요.


어쨌든 10킬로도 마라톤은 마라톤이라고 많이 힘들긴 하더라구요. 달린다고 일부러 먹지않은 아침을 늦게나마 먹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갔죠. 나도 꾸벅꾸벅 졸았지만, 걔도 지하철에서 계속 졸더라구요. 그렇게 서로 졸기만 하다 도착을 했고, 집에서 푹 쉬기로 하며 서로 집으로 돌아갔죠. 그렇게 그날 데이트는 끝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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