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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Feb 13. 2022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23)

인형의 꿈 (by 일기예보)

안타깝게도 마라톤 이후로 가까워져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늘 똑같았죠. 걔는 늘 바빴고, 난 안타깝지만 개인톡으로나마 얘기를 주고받았죠. 이런 만남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죠. 뭐 그건 조금있다가 다시 얘기해 줄께요.


그래도 개인톡이나마 하는게 다행이다마는, 그래도 원래 있던 단톡도 자주 애용했어요. 그, 쭈랑 걔랑 나 셋이서 쓰는 단톡요. 예상은 했지만, 걔는 쭈한테 우리사이에 대해 아무얘기도 안한거 같더라구요. 알고는 있었죠. 걔가 자기 누구랑 만난다는거 친한친구들한테 잘 얘기 안하는거요. 상협이때도 그랬지만고, 내가 알기론 태기 때도 그랬던걸로 알고 있어요. 상협이도 걔가 친구들한테 자기들 사이 얘기 안한게 너무 서운하다고 해서 결국 연애를 공개하게 되었고, 태기도 친구들한테 얘기 안하다가 학교에서 자주 붙어다니니까 친구들이 알게 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즉, 자기가 먼저 친구들한테 연애 시작했다고 절대로 말 안하는 애였어요. 몇년전에 걔한테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긴 했어요. 연애하는거 먼저 남한테 얘기하는거 별로 안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둘이서 좋아서 만나면 되지, 괜히 사귀는거 티내서 다른사람들이 이얘기 저얘기 하는거 싫다고... 왜 오늘 남친하고 같이 안다니니, 밥 같이 안먹는거 보니 싸웠는거 아니니, 둘이 같이 좋은데 여행 안가니... 이런 얘기로 괜히 남들이 참견하는게 싫다고 하더라구요. 뭐 그땐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나? 나야 바보랑 다른 친한 친구들한테 여자친구 생겼다고 떠들고 다녔죠. 그래도 쭈나 안면있는 걔 친구들한테는 절대로 내가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걔 친구들한테는 내가 얘기하는게 아니라 걔가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친구들간의 관계라는게 있잖아요. 사귀기 시작한걸 당사자한테 들어야지 당사자 애인한테 건너 들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내 자신감이 좀 부족한 것도 있었죠. 아직 걔한테 난 좀 어색한가 보다, 그렇기 때문에 걔가 아직 얘기안하나보다. 조금만 더 지나고 가까워 지면 걔가 쭈랑 친구들한테 얘기할꺼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렇게 100일이 지났어요. 크게 달라진 건 없는 100일. 별일 없었던 100일. 요새는 100일이면 진도 나갈대로 다 나간다고 하는데, 난 옛날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진도를 나가지 못했죠. 뭐 손도 못잡고 다녔는데요. 그래도 어찌저찌 100일이 되었어요. 나름 특별한 날이잖아요. 뭐라도 선물을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지나 귀걸이를 줄까? 평소에도 치렁치렁 달고다니는거 안좋아하는데 일단 패스. 지갑을 사줄까? 가방을 사줄까? 맨날 에코백만 메고 다니니 이것도 패스. 그냥 다른 평범한 연인끼리 주는 선물은 그닥 감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한 애는 아니니까. 일반인하고 좀 동떨어졌으니까. 그렇게 선물 생각하며 시내를 서성이다가 걔가 좋아하는 만화 DVD세트를 파는걸 발견했어요. 그 있잖아요... 아, 갑자기 생각안난다. 그 푸르딩딩한 소원 3개 들어주는 정령나오는 동화이름하고 같은 서점이었는데... 맞아요 거기. 그 중고서점. 여튼 거기서 파는데, 그 DVD가 희귀품이었거든요. 나도 그 만화 뭔지 몰랐는데, 걔가 좋아해서 알게 되었어요. 여하튼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구입했죠. 지금 생각하면 100일 선물치고는 상당히 꽝인데... 그래도 걔가 좋아할 것 같아서 마음은 뿌듯했죠.

그리고 100일때 만나서 저녁을 먹었어요. 선물로 DVD세트를 줬죠. 혹시라도 안좋아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좋아해 주더라구요. 뭐 기분은 좋았죠. 그리고 그렇게 저녁먹고 수다떨고 그리고 헤어졌어요. 100일인데 별일 없었냐고요? 그러게요... 별일 없었어요. 그때도 주말이라고 고향가야 된다고 저녁 먹고나서 떠나더라구요. 오래 더 있고 싶었지만 오래 있을수도 없었죠.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던건, 내가 제일 처음에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걔한테 무언가를 요구하지 말자, 그러니까 붙잡을 수도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집으로 가는길에 톡을 보냈죠.


100일동안 만나줘서 참 고마웠고, 앞으로도 남자친구로 계속 있어도 되죠? 라고요.


그러자 걔한테 답장이 왔어요. 단어 하나하나 아직도 기억나네요.


으악, 부끄러워요. 다른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선물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요.라고요.


역시 닭살돋는 멘트는 별로  좋아했나봐요. 괜히 부끄럽게 만들었나라고 생각했어요.  답장을 보면서  배시시 웃었고, 그리고 그땐 몰랐어요. 이날 이후로 족쇄가 하나  채워지게   말이예요. 그것도 가장 치명적인 족쇄가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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