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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혼자 있는 느낌

이제는 아니야

by 내가 지은 세상

나는 아주 예민한 편이다. 남들이 인지도 못하고 무심코 넘어가는 다른 사람의 표정, 말 한마디, 작은 행동들이 다 마음에 걸려 결국 생채기를 내고 지나간다. 가장 힘든 점은 나 스스로도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괴로웠다. 언젠가부터 가장 많이 느끼는 기분은 '우주에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 더욱이 세상에 나에게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따뜻하고 좋은 분들이셨지만, 몸이 약한 언니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동생 사이에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항상 사랑에 고파했지만 관심도 공감도 얻기가 어려웠다. 엄마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면 "언니는 다치고 아프기도 많이 아팠는데, 너는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잖아", "언니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래도 너는 평탄하게 살았잖아" 라며 매번 내가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얘기했다. 객관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항상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20대가 끝나갈 무렵, 한 번은 친구와 같이 유서 미리 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미리 죽음을 생각해 보고 지금을 더 소중히 살아보기 위해 한 일이었다. 한적한 카페에 가서 각자 편지지와 펜을 꺼내 들고 조용히 죽음을 앞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누구에게 유서를 남길지, 어떤 말을 남길지, 남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부탁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친구는 깊이 생각이 잠기더니 이내 편지지가 빼곡하게 유서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잠시 생각에 잠겨 나의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 보며 유서를 남겨보려 했으나, '어떤 생각' 때문에 매우 당황하고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친구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 유서 미리 쓰기 해보면서 많이들 울더라' 위로를 전했지만 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유서를 남길 사람이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아서..."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 믿을 수 있는 지인에게 나의 마지막 말을 남겨야 했지만, 내 생각에 부모님도, 언니도, 동생도, 가장 친한 친구도, 진짜로 나를 이해해 줄 사람, 진짜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 유서를 받아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우주에 떠다니는 미아 같은 기분으로 미리 쓰는 유서에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그 시간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러다 막 서른을 넘었을 즈음 회사 동료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석사를 마치고 입사하느라 나보다 늦게 들어왔다. 남편의 동기 중 한 명이 우리 팀으로 입사하면서, 그 동기를 통해 남편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매우 다정하고 안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후에는 정말 결혼할 사람을 신중하게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교제 전 고민이 많았다. 혼자 고민 고민 하다가 한 번은 귀갓길에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제 서른도 넘었고 정말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아직 당신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잠시 생각하고는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돼요."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남편과 교제를 결심했다.


남편은 교제 시작 후 내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곤 했다. 처음엔 그 말을 잘 믿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뭘 사랑한다는 건지 남편의 마음을 계속 의심했다. 하지만 남편은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기쁜날에도 슬픈날에도 내 곁을 지켜주었고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한 번은 회사 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날, 남편이 집에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또 큰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남편 앞에서 엉엉 울면서 스툴을 집어던져버리고 말았다. 아무 잘못이 없는 스툴이 마룻바닥에 뒤집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얼른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사랑해"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너는 지금 당장 그 남자랑 결혼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했고, 그렇게 '우주에 혼자'가 아닌 '우주에 둘'이 되었다.




중학교가 끝나갈 즈음부터 일기 쓰기를 숙제가 아닌 취미로 갖게 되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털어놔봤자 공감해 줄 수도 없는 이야기들을 일기장에게만 몰래 털어놓았다. 지금 다시 들여다보면 반항하고픈 사춘기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들, 낯간지럽고 유치한 이야기들, 별 것 아닌 일로 머리 쥐어뜯은 이야기 등 별의별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결혼 후에도 친정 집에 어릴 때 일기장을 포함해 내 짐들이 일부 남아있었는데, 동생이 고등학교 때 쓰던 내 일기장을 우연히 열어보고는, 누가 볼까 무서우니 얼른 신혼집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공개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천주교인 시부모님이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종교 잡지를 보내주셨는데,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쓴 소소하고 따뜻한 글들이 실리는 잡지였다. 임신했을 때 뉴스도 드라마도 전부 자극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볼 게 없어 우연히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직장인, 청년들, 우리 부모님 같은 어머님 아버님들이 쓴 우리 모두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임신 기간 내내 그 잡지를 통해 태교를 했다.


작년에 건강 문제로 휴직하는 동안 우연한 기회로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하는 강연에 갔다. 몸이 매우 안 좋아 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을 때라 건강 아카데미 강연을 갔는데, 참석자 중 젊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고 모두 어르신들이었다. 사지 멀쩡해 보이는 젊은 처자가 건강 아카데미에 오니 눈에 띄었나 보다. 강연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한 여자분이 "안녕하세요, 편집실 직원인데요" 인사하며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냐고 했다. 오게 된 연유를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혹시 강연 후기 써주실 수 있나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제가요??"라고 되물으며 후기 써서 드릴 수는 있는데 일단 보내볼 테니 별로면 무조건 폐기해 달라고 했다. 편집실 직원은 웃으며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강연에서 느낀 점을 빠짐없이 써 달라고 해서, 강연을 가기로 결심하게 된 순간부터 건물에 처음 들어가서 느껴진 분위기, 강연 내용과 느낀 점 등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글로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다.


예상치 못하게 편집실에서는 내 글을 읽고 아주 좋아했다고 했다. 애초에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글을 싣는 잡지이다 보니, 잡지에 글을 실을 정도의 완성도가 있는 글이 되려면 편집실과 여러 번 메일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글을 수정 요청하고 다듬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 글은 추가하거나 수정 요청할 부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달에는 남편과 함께 돈과 영성 강연에 다시 참석했는데, 같은 직원이 다시 다가와 "이번에도 후기 써주실 거죠?"라고 했다. 나는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린다 싶으면서도 일단 말이 나왔으니 뭐라도 써보자는 마음으로 후기를 써 내려갔다. 일단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하니, 강의 내용을 복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감사 인사와 함께 후기를 보냈다. 편집실에서는 지난번 글도 좋았지만 이번 글은 더 좋다면서 편집실 직원 모두가 정말 좋아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두 편의 내 글이 잡지에 실렸다. 내 글이 누가 보기에 못 볼 정도의 글은 아니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잡지에 실린 내 글을 읽고 조금 실망한 것도 있었다. 잡지의 취지와 분량에 맞게 글의 일부가 편집이 되었는데, 간략하게 정리되어 잘 읽히는 것 같았으나, 날것 그대로의 내 글의 맛이 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에 내가 쓴 글을 그대로 올리고 싶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가톨릭 다이제스트에 보냈던 원글 두 개로 작가 신청을 했고 곧 통과가 되었다. 일기장에 아날로그로 쓰던 글을 온라인으로 옮겨 좀 더 정리해서 보관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누가 보겠나 싶어 작가 신청 시 저장했던 글을 바로 발행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ㅇㅇ님이 라이킷했습니다.'

'ㅇㅇ님이 라이킷했습니다.'

...

'라이킷수가 10을 돌파했습니다.'


글을 발행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좋아요가 눌리기 시작하더니 좋아요가 10을 돌파하여 20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제목만 보고 내 글을 눌러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한데, 심지어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가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내 생각과 감정은 아무에게도 공감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 중에 내 글에 공감을 해주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너무 놀라고 감사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글을 올렸는데 계속 사람들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간다. 한 분 한 분께 정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우주에 혼자였던 나는, 결혼 후 둘이 되었고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세상에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내밀고 있다. 나를 꽁꽁 숨기고 있던 내면의 장막을 아주 조금 걷어내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우주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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