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6 돈과 영성 강의 후기
흰물결 아카데미는 참 신기하다. 강의를 듣고 나면 내 머릿속에 회오리가 몰아친다. 지난번 건강 아카데미에 참석했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 돈과 영성 강의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흰물결 아카데미는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돈과 영성 강의를 들으면서도 내 인생의 돈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나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 예체능계 특목고를 진학하게 되었다. 예체능 쪽으로 유명한 학교였지만, 한편으로는 학비가 비싸서였는지 돈 많은 집 자제들이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아버지가 돈을 부족하게 벌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은 다른 친구들에 비교도 안되게 평범한 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에다가 실기 성적도 좋았고, 우리 집이 평범한 집이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 돈 많은 집 애들이 비싼 과외비 들여서 아무리 해봐도 항상 내가 더 잘했다. 결국 나는 좋은 대학의 원하는 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즐겁게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결혼 적령기가 되자 친구 결혼 전 모임을 통해서 중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는데,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성실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부잣집에 시집가 비싼 차 타고 다니며 사모님 노릇하며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부러웠다. 그즈음부터 가치관이 조금씩 흔들렸던 것 같다. 공부 잘하고 성실하게 산 나의 가치가 돈 앞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인정욕구가 그 무엇보다 컸던 나는, 학생 때는 시험을 잘 본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때 가장 기뻤고, 입사 후에는 내 힘을 보탠 제품이 실제 세상에 나와 사람들의 호평을 얻을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입사 초기에는 내 통장에 월급이 얼마나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일에서 얻는 성취감이 너무 크다 보니 월급은 뭐 대기업이니 알아서 계산해서 주겠지 싶었다. 돈을 잘 쓰지도 않는 성격이라 신입 월급이라 해도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돈 많은 부모 혹은 시댁을 둔 친구들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노력 없이 편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뉴스에서 돈과 명예가 있고 없고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갈리는 것을 보면서, 내 월급으로는 턱도 없는 집값 상승을 보면서 점점 더 돈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고 내 마음속 돈에 대한 갈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직장에 다닌 지도 오래,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다 보니 직장은 오로지 월급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뿌듯함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점점 더 계산적이게 되었고 손해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늘 베푸는 성격이라 좋은 것이 생기면 항상 나누고 무엇이든 사례도 더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나는 그런 걸 보면서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걸 왜 나눠주냐며 핀잔주기도 했다.
지금도 월급에 비해 돈을 훨씬 적게 쓰고 저축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돈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 그럴까. 엄마는 내가 '불안해서'라고 한다. 원래도 걱정이 많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성격인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니 불안해서 그런가 보다 한다. 내 생각엔 나의 '인정욕구'가 돈에서도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공부 잘한다, 일 잘한다 항상 인정받는 말에 목메었던 것처럼, 어디 쓸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돈이 많다고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남편과도 종종 향후 양육비, 노후 자금 등을 이야기하며 돈에 대해 의논하곤 하는데, 이런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생각의 실타래를 안고 남편과 함께 '돈과 영성' 강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강의의 핵심은 '돈을 우선순위에 두어서는 절대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진짜 중요한 가치인 '진리, 사랑, 깨달음'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러한 가치를 '선택'하는 삶을 살다 보면, 돈은 알아서 따라온다는 것이었다. 돈도 눈과 귀가 있어서 자신이 더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사람과 일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어느덧 돈은 따라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돈 위의 사람인지, 돈 밑의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사실 난 점점 돈 밑의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의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 흩뿌려져 있던 많은 사고 조각들 중 강의 내용과 비슷한 생각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몇 가지 뜻이 통하는 생각들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였다. 이전 직장에서 연구소장님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 비결을 말해줄 때 들은 이야기로, 한때 마음속에 주문처럼 새기고 다녔던 말이다. 내가 추구하고 옳다고 생각한 가치관과도 맞는 이야기라 더 기억에 남았었다. 돈과 영성 강의에서 말한 '사람과 일을 진심으로 대하면 돈은 따라온다'라는 내용과 같은 말이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성과급을 더 받기 위해서 무얼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돈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내가 바라는 사람들의 인정도 모두 끌려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돈과 영성 강의는 내 생각 창고에 있는 것들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두 번째는 '생각이 있으면 길은 어떻게든 열린다'였다. 나 스스로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이 무언가를 제안했을 때 내가 제일 많이 댄 핑계가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였다. 돈과 영성 강의에서는 '돈이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사실 무언가 하고자 하는 생각만 있으면 돈은 어떻게든 구해지고 시간도 어떻게든 내게 되어있는데... 그동안 내가 핑계를 대며 흘려버린 많은 경험의 기회들, 인연의 기회들이 떠올랐다.
어릴 적 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문득 내가 걷는 길, 내가 사는 아파트, 내가 다니는 학교 이 모든 것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누군가 기획하고 설계하고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도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결심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세상의 사물들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내 힘을 보태고 내가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드는 가슴 뛰는 꿈을 꾸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금이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돈에 대한 걱정과 집착은 접어두고, 핑계도 넣어두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통해 진심으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할 때, 어느덧 내게 필요한 만큼의 돈은 저절로 따라와 있지 않을까!
(*이 원글의 편집본은 '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실렸습니다)